어느새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 한밤의 냉기가 여전히 방을 차갑게 식히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따뜻한 공기가 방안을 가득 매울 것이다. 아직은 집 밖을 나서기 위해선 두꺼운 옷을 입어야 하고, 아주 찰나의 순간에는 거리에 눈이 올 것만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곧 눈이 오려나.
여전히 가끔(조금 자주) 우울해질 때가 있다. 과학적으로 왜 그런지 이해한 순간부터 조금은 나아졌지만 그럼에도 나의 삶에 그런 순간이 찾아올 때면 나는 힘들어진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삶을 견디는 것도 벅찬데, 어느새 나이는 서른을 넘었고 나아지는 언제가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 사실은 벅찬 마음에 몇 겹의 우울을 덧씌우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몇 걸음 떼질 못하고 그저 주저앉았다가, 잠시 무너졌다가, 해야 할 일을 바라만 본다. 풀리지 않는 실타래가 어느새 나를 덮칠 만큼 부풀어 올랐다가 또 잠시 소멸했다가, 그렇게 되풀이된다. 매장에 출근하기 전 잠시라도 해야 할 것들을 처리하기 위해 일찍 와 앉아 있다가는 숨이 안 쉬어져서 도망치듯 잠시 거리로 나온다.
여느 날과 같이 늦은 밤,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길에,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다 문득 바라본 하늘에는 하나의 별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하늘 너머에는 존재하는 것들이, 나의 눈에는 보이질 않았다. 이곳의 빛이 너무 밝기 때문이다. 세상을 빛내는 것들은 너무나도 충분해서, 나 하나쯤은 빛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나도 한때는 저들만큼 밝게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렇게 바르고 눈이 부시게,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는데.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다, 도통 도착할 생각이 없는 버스가 미워졌고. 점차 굵어지는 빗방울이 서러웠다.
먼 시간을 돌아 들어온 집에선 한기가 돌았다. 오늘은 술을 마셔야겠어. 취한 채 잠이 들어야 조금은 덜 슬플 것 같아서. 아주 늦은 저녁 약간의 술과 함께 밥을 먹었다.
뭐가 그리 서러웠는지 나는 핸드폰을 켜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너무 힘들다고, 좀처럼 마음이 잡히질 않는다고. 벌써 잠에 들었을 친구에겐 어째서인지 금세 답이 왔다.
괜찮지 않아 보이지만 괜찮으냐는 물음. 사실 전혀 괜찮지 않다고. 지난번 전화에서, 이제는 많이 좋아졌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고, 했다.
잠시의 침묵 끝에 울린 핸드폰을 보고 나는 실소가 나왔다.
"우린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을 거야."
나를 잘 모르는 누군가가 저렇게 말했다면 나는 분명 화를 냈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은 쉽지.라고 생각하며 꼬인 속을 더 배배 꼬아 바라보았을 것이다.
다만 저 말을 내게 건넨 게 나를 잘 아는 친구여서, 정말로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진심이 느껴져서, 다행이었다.
어떠한 방법도 제시하지 않은 단순한 응원이, 나를 살게 했다.
'우린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을 거야.'라고 속삭였다.
그렇게 말을 내뱉으니 정말로,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 이내 핸드폰 화면은 꺼지고 어둠이 찾아왔지만 이번에는 이 어둠을 독해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번의 새벽을 이해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