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순간은 꼭 남겨야 한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지.
chapter's ended : 안녕, 커피빈!
인생에 한 챕터가 끝났다. 이십 대의 끝자락에서 시작한 커피빈에서의 일은 나에게 도전이었고, 때로는 버거운 현실이었으며, 성장의 공간이었다. 2022년 11월부터 바로 어제까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일했다. 커피빈에서 처음 일하게 된 건 취업 준비를 하는 동안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였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후 모아놓은 돈이 떨어져 돈을 벌어야 했고, 이왕 시간을 쓰는 거 해보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카페에서 일해보고 싶었고, 경력이 없는 내가 빠르게 일할 수 있었던 건 커피빈의 한 매장이 굉장히 바쁘고, 당시에 사람이 급하게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내가 왜 그렇게 쉽게 일을 하게 된 건지, 그곳에 사람이 왜 부족했는지.)
그렇게 2022년 11월 종로의 어느 매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일하는 동안 참 많은 일을 겪었다. 돌이켜보면 매장에서 일하면서 웃는 때가 더 많았다. 그랬기 때문에 지금까지 일할 수 있었겠지만. 내가 일한 매장은 특정 시간에 매우 매우 바쁜 곳이었고, 그만큼 빠르게 일을 '잘'해내야 했다. 분명 나는 6개월 정도만 일을 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입사했지만, 망할 승부욕이 생겨버렸다. 실수 따윈 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 는... 그런 마음이.
그렇게 카페에 집중을 하다 보니 잠시 취업이 뒷전이 됐다. 사실 그때 나는 길을 잃은 사람이었다. 이전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나서 무얼 하고 싶은지, 무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때 내가 버틸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커피빈에서의 일이었다. 실패한 사람이 된 것 같다는 마음이 카페에서 일하는 순간만큼은 크게 들지 않았으니까. 가만히 에스프레소 샷을 내리고, 들어온 음료를 만드는 시간만큼은 웃으면서 지낼 수 있었으니까. 함께 일하던 직원들이 좋은 사람이었던 것도 다행이었다. 대부분 나보다 어렸지만, 내 정신연령이 낮은 탓인지, 직원들이 착했기 때문인지 함께 일하면서 자주 웃었던 기억이 있다. (부디 직원들도 그랬길 바라지만,, 아니면 머.. 절 수 ㅎㅎ)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어느새 일한 지 1년이 넘어가던 때 기나긴 방황을 끝내야만 했다. 나는 진심으로 취업 준비를 하기로 결심했다. 못 가본 곳을 향한 호기심, 그리고 나도 그곳에서 빛을 봐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취업준비를 위해 학원을 다니기로 했다. 하지만 학원에 다니기 위해선 일하는 시간을 바꿔야만 했다. 그때 알아본 학원은 대부분 오전-오후 시간대였고 나는 정확히 그 시간에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함께 일했던 점장님이 도움을 주었다.
이전에 함께 일했던 점장님은 1년 정도 나와 함께 일하다 다른 곳으로 가있던 상황이었다. 나는 나의 상황에 대해 말했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라니 자신이 일하는 매장 저녁 타임 직원은 오전 타임으로 가고 싶어 한다며, 서로 바꾸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운 좋게 모두가 긍정적이어서 나는 자연스레 친하게 지냈던 점장님과 다시 일을, 저녁에, 학원을 다니며 할 수 있게 되었다.
2024년 5월. 나는 오전에 학원엘 가고 오후엔 카페에서 일을 했다. 피곤했지만 앞으로 나아간다는 희망이 보였다. 학원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당연히 바로 어떤 결과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계속되는 실패와 좌절은 나를 겁먹게 했다. 이대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로 끝나버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 '할 수 있겠는데?'라는 마음이 드는 그날까지, 참 깊이도 무너졌다.
그러던 2025년 1월. 어느 날 계단 끝의 빛을 보며 '할 수 있겠는데?'라는 마음을 가진 이후 다시 한번 도전의 불씨를 살렸다. 그리고 3월 어느 날 운 좋게도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한 회사에 취업했다. (회사와 관련된 이야기는 일을 시작하며 새롭게 적어볼 예정입니다.)
그리고 바로 어제, 2025년 3월 14일을 끝으로 퇴사를 했다. 아마도 마지막이 될, 늦은 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마음이 무척이나 싱숭생숭했다. 이곳에서의 모든 경험과 추억이 스쳐 지나갔다. 처음 커피를 내리던 순간, 동료들과 웃으며 함께 일하던 순간, 그리고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한 걸음 내딛으려 했던 나의 모습까지.
나의 인생의 한 챕터가 끝이 났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버티게 해 주었고, 그만큼 고생한 순간이 끝이 난다는 것. 커피빈에서 겪은 수많은 일들이 나의 삶을 한층 더 깊이 이해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한 챕터의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이곳에서 얻은 모든 경험과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을 마음에 품고, 나는 다시 한번 새로운 문을 연다. 당장 다음 주부터 지금까지 해온 일과는 완전히 다른, 한 브랜드의 마케터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그 과정이 무척이나 어려울 것이라는 걸 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나는 이곳에서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