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을 대화_회의와 낙관

사운드워크 컬렉티브 & 패티 스미스 :

by ㄱㄷㅇ

아주 오랜만에 전시를 봤다. 3-4년 전쯤 전시 관람에 흥미를 느끼고 한창 보던 때엔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은 봤던 것 같은데, 작년에는 두 개의 전시나 봤나 싶다.

올해 전시관에서 본 첫 전시는 사운드워크 컬렉트비와 패티 스미스가 협업한 전시, 끝나지 않을 대화였다.

얼리버드 티켓을 구매했고, 원래는 혼자 보려 했으나 어쩌다 보니 후배들과 함께 보게 됐다.


우리는 피크닉 근처 밥집에서 간단하게 밥을 먹고, 평소 꼭 가보고 싶었던 계단집이라는 카페에 갔다.

우리가 만났던 목요일에는 낮까지 비가 무척이나 많이 왔다. 나는 내심, 이렇게까지 비가 오는 날이면

사람이 많이 없을 거라는 기대를 했던 것 같다.


다행히 밥집에도, 계단집에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특히 계단집은 커피와 휘낭시에가 아주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최근에 마신 커피 중에 제일 맛있었던 것 같고, 잠시 원두를 구매할까 했지만 포기했다.

나는 보통 전시를 보는데 한 시간에서 한 시간 삼십 분 정도가 걸린다. 그래서 이번에도 응당 그럴 것이라 생각했고, 네시쯤 전시장으로 향했다.


피크닉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오랜만에 간 그곳은 크게 변한 점이 없었고, 우리는 무사히 전시를 보기 시작했다. 전시를 보는데 사람이 많이 없어서 아주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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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사운드워크 컬렉티브의 창립자인 스테판 크라스닌스키가 세계에서 직접 채집한 필드리코딩 사운드와 패티 스미스의 시적 이야기를 보여준다.


처음 시작은 둘의 대화가 이어진다. 자연에 대해, 절망에 대해, 인류의 파멸적인 모습에 대한 서로의 신념이 보인다. 인상적인 말이 많았지만, 집중하고 보느라 따로 찍진 못했다. 분명 속으로 기억해 내야지. 하는 말도 있었던 것 같은데, 떠오르진 않는다. 다만,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말만은 분명하게 찍어야만 했다.


인간과 자연, 자연과 인간. 자연이란 인간과 인간의 부속물이 아닌 모든 것을 지칭한다. 숲, 나무, 풀, 흙 같은 것부터 물, 강, 바다,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져 있는 큰 흐름 속에서 인간은 그저 단순히 순간의 파편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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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작품은 수도자와 예술가와 자연/체르노빌의 아이들

이라는 두 개의 영상과 소리, 시였다.

이때 무척이나 당황했던 것이 떠오른다. 분명 둘의 대화만을 보았을 땐 희망차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열될 것 같았는데 굉장히 심오한듯한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종교적인 이야기와 그 속에서 발견되는 하나의 빛 같은 것들.

체르노빌의 붕괴 같은 것들은

사실 체르노빌 사고는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발생했던 일이라 미디어에서 본 것들이 전부이다.

그래서 체감을 크게 하지 못하는 사건이었기도 했다.

마치 소국의 멸망 같은 모습들이 벽에 비쳤다. 그리고 시적 언어는 그 광경을 더욱 참혹하게 만들었다.


이 전시를 다 본 이후엔 2층으로 올라가 총 네 편의 영상을 보게 된다.

메데이아와 파솔리니/ 길 잃은 자들의 절규와 무정부 상태의 군주


앞선 두 이야기는 한 인간의 대한 이야기를, 뒤에 두 이야기는 인간으로 인한 자연의 파괴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들이 있다. 인간이 만악의 근원이라는, 인간은 파괴밖에 할 줄 모르며 성악설이 진실이라는 이야기.

이 네 가지 모습은 마치 그런 우스갯소리를 진실로 보여주는 듯하다. 인간의 파멸을 결국 다른 인간에 의해서, 혹은 본인 스스로에 의해서였고, 지금의 자연은 인간으로 인해 너무나 큰 파괴를 당하고 있으니까.


나는 총 네 편의 이야기를 보는 동안 한 곳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 보이 어느새, 그 넓은 전시장에 나만 존재했다. 같이 보던 후배들은 먼저 다음 전시로 넘어갔고, 나는 그 네 편의 이야기를 전부 보아야만 할 것 같았다. 마치 그 속에 굉장한 진리라도 숨어 있는 듯, 숨죽이도 또 숨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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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역시 모든 작품 중 나는 길 잃은 자들의 절규라는 작품이 가장 좋았다.

이야기의 이해가 가장 쉬웠고, 나에게 주는 경각심 혹은 제작자의 의도가 가장 피부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을 훔쳤다. 본래 자기 것이 아닌 것을 마치 본인의 소유물인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살아오고 있다.

나 하나의 영향력은 아주 미미하지만, 80억이 넘는 수를 생각하면 그저 무섭기만 하다.


오후 다섯 시 삼십 분이 넘어가자, 작품을 모두 온전히 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가만히 혼자 앉아서 작품을 감상하는데 직원이 여섯 시까지 관람 가능하니 참고해 달라고 전했다.

나는 파솔리니까지 모두 관람을 마친 후 다음 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는 산불이라는 작품과 대멸종이라는 작품이 진행되고 있었고, 역대 인간들에 의해 멸종된 종들과 산불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환경 파괴에 대한 묵시록적인 기록이 담겨 있었다.


마지막으로 올라간 곳에선 한국만을 위한 전시라고 했다. DMZ에 대한 이야기가 그곳에 있었다.

파괴와 붕괴의 공간에서 인간이 없어졌기에 생존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자유에 대한 인식을 제고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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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인간으로 인한 기후 위기와 사회 이슈에 대해 말해주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회의감을 준다. 최종적으론 우리가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 말해주는 것이고, 그것에 대한 생각을 오래 하게 만든다.


그렇게 전시를 보고 친구들과 저녁을 먹으며 전시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발생했다. 그동안 인간에 의해 내가 받은 상처들에 대해서, 그렇지만

인간에 의해 받은 치유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나는 사람을 믿는다. 나라는 인간이 나로서 존재하는데 가장 큰 힘이 되는 건 결국

'나'와, 곁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따뜻하게 타인을 대한다면

그것이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마음을 갖고 산다.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그러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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