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지내기를!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하굣길에 친구를 보았다. 한 번도 인사한 적 없던 그 친구에게 왜 인사를 건넸는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나는 친구에게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고, 친구는 학교 앞 컴퓨터 학원에 가던 길이라고 했다.
친구와의 첫 만남은 아마도 그때였을 것이다. 그 이후로 그 친구와의 접점은 없었고,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야 다시금 그 친구를 보았다.
친구의 이름은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어린 날의 기억이 나지 않았던 걸 수도, 너무 오래전이었기에 기억이 바로 떠오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학생들이 으레 그렇듯 나는 친구와 함께 다른 친구들과 자연스러운 무리에 속해 있었다. 어쩌다 친해졌는지는 기억나진 않지만, 다른 친구들이 운동부였기 때문에 나와 친구는 자연스레 다른 친구들이 운동을 다 끝날 때까지 학교 벤치에 앉아 기다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는 갑작스레 운동부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다른 친구들을 구경하고 기다리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때때로 외로웠기도 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늘 같은 무리였고, 함께였다.
운이 좋게도 같은 무리의 친구들이 모두 같은 중학교에 진학했다. 그리고 친구는 갑자기 나에게 운동을 그만둘 것이라고, 함께 학원에 다니자고 했다. 나는 함께 학원에 다닐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에 기뻤고, 그게 이 친구라서 더더욱 편한 마음을 가졌다. 그 대화를 한 당일이었는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학원 상담을 함께 하러 갔고, 그 학원에 바로 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중학교 3년을 함께 지냈고, 어쩌다 보니 고등학교까지 같은 고등학교에 갔고, 어쩌다 보니 같은 반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내 10대의 대부분은 그 친구와 함께였다. 무리의 다른 친구들도 그랬지만, 함께하는 시간과 생각을 더 많이 공유하던 친구였다.
한 번은 같은 독서실을 다니면서 애니팡이라는 게임을 목숨 걸고 했던 기억이 있다. 학교가 끝나고 독서실로 가고, 공부를 시작하기 전이라며 하나의 핸드폰을 두고 1등을 해보자며 네 개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던, 그렇게 1등을 찍어내고 깔깔대며 웃었던 기억. 대부분의 기억에서 나는 웃고 있다. 스무 살이 되고 그 친구와 아무 생각 없이 광주로 여행을 떠났다. 우리는 그곳에서도 깔깔대며 웃었고, 날이 아주 더웠지만 그냥 그런대로 지내다 돌아왔다. 내가 대학교 1학년이 되어 학교 생활에 흠뻑 빠져 지내던 때, 술을 마시면 이상하게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댔다. 친구는 또 술을 마셨냐며 구박했지만, 그럭저럭 웃으며 받아주었던 것 같다. (나중엔 술 쳐 마시고 전화 좀 그만하라고 하긴 했지만)
성인이 되어서부턴 1년에 1-2번 볼 때도 있었지만, 오랜만에 만나도 늘 어제 본 것 같은 친구가 어느 날 전화를 걸어왔다. 잘 지내냐는 물음, 그리고 본인이 결혼을 할 것 같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오늘 친구의 결혼식엘 다녀왔다. 오랜만에 본가 친구들을 보며 깔깔대며 웃다가도, 친구가 버진로드에서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린아이가 어느새 번듯하게 자라 결혼을 하다니.
친구의 역사를 전부 아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진심으로 친구의 결혼이 친구의 행복을 책임져주기를 바랐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한 친구가 이제는 누군가의 가족이 되었다는 사실이 이상하면서도 뭉클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렇게 조금씩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게 되는 건 아닐까. 아들에서 친구로, 친구에서 누군가의 연인으로, 그렇게 또 누군가의 가족으로.
오늘 친구가 지은 웃음은 어릴 적 우리가 나눴던 장난스러운 웃음과는 조금 달랐다. 더 단단하고 따뜻하며, 그럼에도 장난이 살짝 섞인 웃음. 친구의 얼굴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마음속으로 작은 바람을 더했다. 부디, 친구의 많은 날이 지금처럼 환하게 웃을 수 있기를. 부박함보다 깊고 따뜻한 하루가 이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