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양평에 다녀왔다. 원래 1년에 한 번씩 함께 여행을 다니지만, 이번 여행의 목적은 그런 게 아니었다.
무리 속 친구들이 결혼을 하는데, 그 결혼의 청첩장을 받기 위해서였다. 청첩장 모임을 위한 엠티라니. 어쩜 얘네는 10년이 넘도록 이렇게 재미를 추구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는 '재밌을 것 같다.'라고, 어차피 올해도 어딘가로 가긴 갔을 테니 이번에 함께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일정은 단순했다. 각 지역에서, 차를 갖고 있는 친구가 가까운 지역에 다른 친구를 픽업 후 숙소 인근 식당에서 만나기로 한 게 전부였다. 다만 이런 여행이 그렇듯 예상치 못한 일은 늘 발생했고, 나와 반대편에서 오는 친구들의 길이 많이 막혀 우리와 같은 시간에 식당에 도착하질 못했다.
결국 우리는 따로 식사를 하기로 했고, 먼저 식사를 마친 우리는 장을 본 후 펜션으로 먼저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펜션은 나의 생각보다 무척 쾌적했다. 마치 1박 2일 같은 프로그램에 나올법한 넓은 거실에 원목 가구들로 놀라기도 했다.
우리는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곳에서 차가 지나갈 때마다 친구들이 도착했다며 문 앞으로 향하다가, 친구들이 아니라며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기를 몇 번 반복했다. 그러던 중 진짜 친구들의 차가 들어왔고, 다른 친구는 웰컴 음료수를 준다며 도마 위에 파워에이드와 토마토 주스를 따른 후 가지고 바깥으로 나갔다. 12년째 보면서, 그리고 12년째 매년 여행을 다니면서 이렇게 반가움을 갖는 게 어떤 마음인지에 대해서 잠시 생각했다.
우리는 짧고 소란스러운 인사를 마치고 넓은 방에서 각자 앉아 있었다. 누군가는 자러 갔고, 나와 몇 명의 친구들은 산책을 나갔다.
양평 서종면에 있는 펜션은 소나무향기 펜션으로, 사실 친구들이 장소를 정할 때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저 따르겠다는 마음이었다. 펜션 주변에는 몇 개의 펜션이 몰려있고, 작은 마을이 있었다. 다른 펜션들과 달리 유독 더 산중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그만큼 조용하고 아늑한 마을이었다.
길에는 금계국과 데이지가 가득했다. 우리는 조용한 곳에서 아주 약간 소곤거리며 길을 걸었다. 이렇게 조용한 시골에만 오면 왜 그렇게 마음이 사근대는지 모르겠다. 서울에서 온갖 시끄럽고 복잡한 정보를 받아들이던 눈에 오로지 길가에 핀 꽃과 작은 동물들만 들어와서 그런 건지, 아니면, 오래된 친구들과의 침묵이 어색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그렇게 잠시 불안이란 감정을 잊었다. 오로지 지금을 기억하기 위해 마음을 쓰고, 머리에 힘을 주었을 뿐이다.
저녁이 되어 바비큐를 먹었다. 잔뜩 고기를 먹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불멍을 해야 할 시간이 왔다.
불멍이라는 것이 유행한 지도 꽤 시간이 흘렀지만, 내 기억 속 마지막 불멍은 초등학교 6학년 수련회때 했던 캠프파이어가 전부였기 때문에 약간의 설렘을 가지고 바깥으로 향했다. 나는 으레 캠프파이어가 그렇듯이 우리도 감성에 젖을 줄 알았다. 다들 마음이 촉촉해져선, 지금껏 해쳐온 상황들에 대해서, 각자의 마음에 대해서 조용히 대화를 이어갈 줄 알았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차마 이곳에 적지 못할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어쩜 이런 분위기와 순간에서도 얘네는 이렇게 똑같을까, 싶으면서도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나이를 먹고, 각자의 일상을 꾸리고, 몇 달에 한 번 보는 사이가 되었어도 여전히 이 모닥불 앞에서는 예전처럼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고, 뜬금없는 얘기에 웃을 수 있다는 게 말이다. 변한 게 많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진짜 중요한 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걸 그날 밤 알았다.
방으로 돌아와 늦은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혼자 술을 마시다 혼자 취해서 쓰러지듯 먼저 잠에 들었지만.. 다른 친구들도 비슷하게 잠에 들었다고 한다.
다음날 우리는 점심으로 양평해장국을 먹고 밀축제를 향했다. 그런 지역축제를 보는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양평밀축제는 운이 좋게도 우리가 여행하던 그 주에 열렸고,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양평밀축제에서는 다양한 밀과 수레국화가 가득했다. 우리는 곳곳에 놓인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으며 걸었다.
그러다 떠나기 전에 축제 같은 곳에서 보이는.. 미니바이킹을 발견했고, 세상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바이킹을 탔다. (돌아오는 길에 바이킹을 타지 않았던 친구가 말하기를, 사실 그때 굉장히 창피했다고 한다. 어린아이들도 조용히 타는 것을 서른이 넘은 애들이 소리 지르며 탄게 무척이나 모른 척하고 싶었다고. 하지만 근래 겪은 도파민 샤워 중 가장 큰 도파민 샤워여서 소리를 안 지를 수 없었다...!
우리는 양평밀축제 관람을 끝으로 헤어지기로 했다. 나는 아침부터 숙취로 인해 굉장히 힘들었기 때문에, 밀축제를 끝으로 친구들에게 우리 이제 갈까...?라고 했고, 다른 친구도 그만 가자...라고 해줘서 서울로 향할 수 있었다.
그렇게 청첩장 모임을 핑계로 떠난 여행이 끝이 났다. 나는 저녁이 다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여행 내내 즐겁기만 했던 건 당연히 아니었고, 아주 약간의 다툼이 있을 뻔도 했지만 ^^ 그럼에도 웃으며 헤어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마음껏 미워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거요. 혹시 그런 사람이 살아 계신가요? 그렇다면 생의 절반쯤은 어떻게든 움켜쥐고 있으시겠어요. 그 삶에 행운을 빕니다. [우시사, 205회 편지 중]
누군가를 아주 잠시 미워했다가도 오랫동안 사랑하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런 누군가가 있다는 건 더더욱 어렵다. 나에겐 이 친구들이 그렇다. 짓궂은 장난에 아주 잠시 밉다가도, 또 함께 웃고, 친구들을 보고 있는 나를 본다. 이런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편지 속 말처럼 생의 일부를 어떻게든 움켜쥐고 있다고 느낀다. 부디 이 삶에 더 크 행운이 있기를 바라고.
찰나를 영원히 기억할 순 없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 찬 순간을 지냈을 때는 더더욱. 당연히 망각이란 인간이 가진 축복이라고 믿으며, 슬프고 불행했던 순간을 잊어야만 인간은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순간을 유독 오래 아파하고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그렇다. 머리가 그리 좋지도 않으면서, 그런 기억과 감정은 나에게 오래 남아 있다. 그렇게 나는 자주 슬퍼지고, 아프고, 좋았던 기억을 끄집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순간을 오랫동안 기억해야 한다. 흔들릴 때마다 꺼내어 볼 수 있도록, 지금 여기의 세세한 결을 기록한다. 모닥불 냄새가 겹겹이 스며든 옷깃, 친구들의 웃음소리, 이상한 춤을 추던 몸짓, 같은 것들을.
무언가를 기록하듯 바라보고 있으면 순간이 아주 조금 느려지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영원한 기억은 없더라도, 순간을 오래 붙들려는 태도만은 내 몫으로 해낼 수 있음을 깨닫는다.
이미 일상으로 흘러가 버린 그 풍경을, 잠시라도 붙잡아두려 애쓰는 바로 이 마음이
결국 내 삶을 견디게 할 존재가 된다는 것을. 그러니 나는 지독히 사소한 풍경을 눈에 새겨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