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이 닿는 곳, 닿지 않는 곳 어디에든지
방 안을 둘러보았다. 처음 시선이 닿은 곳은 천장이다.
일어나 손을 뻗으면 닿지 않지만 나보다 키가 조금 더 크거나
팔이 더 길다면 충분히 닿을 만한 높이다.
살짝 몸을 일으키면 옷장이 있다. 다가오는 겨울에 맞춰
두꺼운 옷을 다시 꺼낸 옷장은 속이 가득하다. 옷을 토해내고 싶다고
말하는 듯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책들이 놓여 있다. 비좁은 방의 한 구석에 차곡차곡 쌓인 책들.
한 권, 한 권 어떤 내용인지 곱씹어봤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읽지 않은 이야기로 남아 있을까.
서서히 왼쪽으로 돌리면 처음 마주했던 옷장, 전자레인지, 싱크대, 세탁기 순으로
나열된다. 세탁기는 거친 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다.
입었던 옷들이 어지럽게 뒤섞인 체.
다음으로 문이 있다. 매일 수어번 나의 손에 의해 문고리를 잡고, 돌리는 곳.
저곳을 나가면 나는 외부인이 된다. 마치 이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문 밖을 나서고, 문을 닫는다.
이곳에 지낸 지 오래되었지만
나의 집 주소를 말할 대마 한 번씩 멈칫거린다
이 문 하나로 나는 내부인과 외부인으로 나뉘고
외부인이 되는 순간 시선 끝은 하늘을 향한다.
좀처럼 먼 곳을 바라볼 수 없는 곳에서
끝을 알 수 없는 곳을 바라보기까지
언젠가 바깥에서 하염없이 어딘가로
어딘가로 걸음을 옮길 때 당연하게도 목적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을 잊어버려야 했다.
그렇게 어딘가로, 어딘가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향하고 있을 때
어둠은 금세 땅으로 떨어졌고
물방울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뿌연 안개가 세계를 집어삼키듯이
날은 금세 차가워졌고
떠나왔던 곳으로
나의 안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주 먼 길을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금세 집에 닿았다.
집에는 여전히 온기가 남아 있어서
차가워진 몸을 데웠고
여전히 세탁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옷들이 뒤섞인 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