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인 줄 알았는데

이른 여름이었어

by ㄱㄷㅇ

바람이 왠지 서글프다고 했던 거 기억나?

나는 작게 미친놈, 이라고 속삭였고

너는 그런 나를 보며 희끗하게 웃었지


있지,

지나간 과거를 온전히 붙잡을 수 없다는 것쯤

이제는 알아야 할 나이인데도 말이야

어떻게든 그때에 머물고 싶어서

나는 아직도 이곳에 있는 것 같아.


교실 벽면에 짙게 적어 두었던

너와 나의 이름은 이제 옅은 흔적으로

다른 것들과 뒤섞여 있고

지워지지 않게끔 애쓰던 노력은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


있지,

내가 그때 네 손을 붙잡았다면

우리의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까.

해맑던 네 웃음이 무너지지 않았을까?


만약이라는 가정 따위 어림없다는 것쯤 아는데

그런데 말이야

나는 자주 아프고 말아.

너로 인해서

그때에 의해서


시간이 지나면 고통은 사라진다는 어른들의 말은

거짓이었을까, 아직도 이렇게 아린 걸 보면

그래, 그들의 말은 거짓이었던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나는 여전히 네 웃음소리가 들리고,

네 발걸음이 보이고,

나보다 한 발치 앞서서 걷다가 문득

잘 따라오고 있는지 감시하기 위해서

나를 향해 돌아보는 네 얼굴이 그리울 리가 없는 거잖아.


겨울이 지나고

푸른 잎들이 자라기 시작하기에

봄이 온 줄 알았는데

수국이 펴있더라.

이른 여름이었던 거야.


지금은

봄이 아니라

이른 여름이었던 거야.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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