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최고의 영화. 세계의 주인을 봤다.
이 대 안에 있는 아트하우스모모라는 영화관에서 보았는데
바로 시작해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의 모든 장면을 한 번씩 곱씹어 본다.
그 장면은 어땠지, 그 대사는 어땠지. 하고
이 과정은 평가라기보다는 하나의 소화를 거치는 것이다.
묵직하고 진한 에스프레소 샷을 마시는 듯한 감각이,
영화를 보는 내내 쓴 맛과 그 속에 담김 향기로움이
수차례 나에게 다가왔다.
영화는 주인이라는 학생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보았던 영화의 세계 속에서
많은 내용이 분노가 되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내가 화를 낼 자격이 있나 싶기도 했다.
그는 가만히 있는데 누군가 대신 화를 내주는 것에 대하여
그것이 또 다른 가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세계의 주인》은 어떤 사건을 말하지 않는다.
그저 그 이후의 시간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진실이나 이유,
설명할 수 있는 단어들 대신
영화는 그 뒤에 남아 있는 침묵과 공허,
그리고 다시 하루를 살아내는 느린 호흡에 머문다.
주인공 주인은 거창한 의미를 가질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누군가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선택을 하고,
누군가에게는 이상한 눈길을 받고,
때로는 억울하고, 때로는 외롭다.
하지만 영화는 그 모든 순간을
비극이나 영웅담으로 부풀리지 않는다.
그저 살아가는 사람의 얼굴을 오래 비춘다.
웃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친구와 어긋나고, 가족과 멀어지고,
아무 말도 못 한 채 가만히 서 있는 모습.
그리고 다음 날이 오면 또 일어나
주어진 하루를 천천히 살아가는 모습.
그 모든 일상들이 말한다.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것. 살아내는 것."
상처는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오해는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군가의 시선은 계속 따라붙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삶은 멈추지 않는다.
머뭇거리더라도, 돌아가더라도,
천천히라도 걸어간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은 결국 선언처럼 들린다.
세계의 주인은 나라는 걸 기억해
타인이 붙여놓은 이름과 해석을 걷어내고
내가 선택한 삶의 방향을 스스로 들고 나아가는 것.
누구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의 허락이 없어도,
내 삶의 주인은 결국 나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세계의 주인은 나라는 걸 기억해
잊으란 말도, 잊지 않겠다는 말도
차마 할 수 없었을 때
너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
그때 네 눈망울이 어땠는지 아니.
무엇보다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네 눈이
차디찬 콘크리트 벽을 옮겨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을 때
순간의 감정은 아마도
무엇과도 비견될 수 없는
공포이자 슬픔이었을 거야.
그렇게 서로를 향해 있지만
서로에게 닿지 못한 채 있었던 시간.
손을 뻗어도
단 한 마디를 건네도
금방 부서질 것만 같던 공기 속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숨을 쉬었지
우주 속 공허의 공간에 빠져버린 시간 속에서 -
타인의 시선이 너무나 무서웠던 순간에도
너만큼은 그렇게 두 질 말았어야 했는데.
너는 혼자가 아니며,
네 삶을 살아내면 된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네 세계의 주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너라는 것을 말해주었어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