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가 고령화에 접어 들었으니, 이제 조직의 고령화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업무를 하며 느끼곤 한다. 고령화란 것이 사회 문제만은 아니구나. 우리 조직에도 다른 조직에도 있을 수 있음을, 혹은 이미 다가왔음을 느낀다.
최근 느꼈던 것 첫째, 내가 나이 듦에 따라 20대 직원을 만나는 수가 점점 줄고 자리가 적으니 20대를 뽑을 기회도 줄었다. 30대 후반, 40대가 주 연령층이 되어버린 회사의 인력구조도 그렇다.
둘째, 그나마 충원으로 여러 이력서를 현업에 건네지만, '경험이 짧네', '자격증이 없네', '왜 이렇게 자주 옮겼을까'라며 이런저런 핑계로 주저할 때이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MZ나 알파세대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또한 얼토당토 않은 이상한 말(관상도 모르면서 관상 들먹일 때)도 듣지만, 결국 가르치기 귀찮다는 것이다.
자주 느끼는 셋째는, 대화가 잘 되지 않을 때이다. 잘 되지 않는 것 하나는 미래가 아닌, 과거 경험으로 지시와 설명이 가득할 때이다. 이유를 물어도 설명하지 못하면 그냥 모르는 거다.
그래서 늙는다는 것은, 일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조직의 시스템도 사고도 행동도 함께 늙는 것이다. 그래서 채용할 때 올챙이 적, 본인들이 열심히 깨지고 터득하며 노력한 그 과정은 희미해지고 마술처럼 뿅!하고 자기몫을 거뜬히 해내는 사람을 바로 채용할 수 있다는 이상한 기대를 한다. 그럼, 이 자리에 있는 우리는 어찌 채용 되었을까.
최근 회사 내 직급 체계에 대한 고민도 그렇다. 우리회사에만 (혹은 몇 안되는 조직에만) 존재하는 '과장대리'직급이 있다. 이 직급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1년만에 회귀했다. 현 조직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새 팀장의 의견도 일리는 있다. 그 직급이 생겨난 배경, 그리고 그 직급을 경험한 사람들은 불만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근데 나 또한 그 직급을 경험했으나 도대체 어떤 역할인지, 어떤 자격 요건이 있는지 명확하지 않고 그저 과장을 바로 주기는 싫고(싫다기 보단, 적체를 줄이기 위한 한 방법이었던..) 중간에 단계 하나 넣어 과장처럼(또 호칭이나 명함은 과장임) 일한 다음에 과장을 주는 조직의 꼼수(운용의 묘라고도;;)로만 보였다. 본인들도 처음엔 어느 정도의 불만이 있었을 텐데(자신이 희생양이라고 말함), 그 불만은 이제 없고 당연한 수순으로만 생각한다. 대리 다음은 과장으로 알고 있는 경력직도 많은데 한 단계를 3년간 더 거쳐야 한다면, 새로 들어온 경력직들은 놀라지 않을까? 또한 그 깔대기 사이로 이 직원들이 빠져 나간다면, 그 만큼 직원을 양성하는데 더 많은 비용이 든다. 그래서 오래 다닐 수 있도록 변화를 주거나 가르칠 생각보다 가르치지 않는 직원을 찾지만, 그들은 우리를 찾지도 않고 생각보다 비싸다.
그래서 이 의식의 보수화가, 고령화가 되어 간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한다.과거의 경험에 맞추어 나도 이랬고 다른 사람(대부분 오래 다닌 직원들)도 이렇게 생각하니 이게 맞다는 것. 다른 입장을 이해하지만 과거의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저항을 줄인다는 것. 부인하진 않는다. 다만, 과거에 경험했던 사람들의 기준이 아닌, 앞으로 경험하게 될 사람들의 기대, 사회 풍토를 담아 제도를 보완하고 개편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데, 다른 노력이나 방법보다 그저 하던대로 하는 것을 편하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 모든 일을 하다보면 내 의견과 상대의 의견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답이 없다. 간혹 정공법으로 솔직하게 묻고 직원들의 속의견을 듣고 추려 리더에게 던질 수도 있다. 그럼 리더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드는 것도, 직원들이 스스로 고민하게 만들어 주는 과정도 필요하다. 그 의견을 듣고 묻는 과정을 막아버린다면, 과거 방식의 답습 뿐이다. 그래서 이 어려운 시기에, 변화를 맞지 못하고 꺾이거나 과거의 힘든 시기를 다시 겪을 수도 있다. 긁어 부스럼 만들 수 있기에 신중을 기하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의견도 자꾸 묻고 물어야 질문에 대답하고 질문을 고민하는 능력도 길러진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직원들은 막연하게 높은 보상, 좋은 평가, 다양한 복지를 바라지 그 과정이나 구조, 맥락은 모르니 자주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도록 조직이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 생각 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도 학습의 한 방법이니 말이다.
'법은 권리 위에 잠든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신규입사자에게 법정의무교육을 할 때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말싸움이 아닌 주장이나 의견을 말하는 것, 불합리나 공감이 안되는 것에 대해 솔직하게 요구하고 묻는 것도 근로자의 권리이다. 그래서 직원이 강해야 회사도 강해진다. 겉으론 '존중', '배려'라 말하지만 그 속내는 '갈등 회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순간에, 나는 그저 의사결정을 돕는 역할 뿐이란 것이 때론 답답할 때가 있다. 조직이 고령화가 되어갈수록 기존 기득권(회사에 오래 다녀 자신을 따를 사람을 많이 보유한 관리자)을 갖은 사람에게 의견이 기울고 맞춰지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꼭 이런 분들이 쿨한 척 하지만 막상 얘기해보면 자기 얘기만 99%이다. 마치 '이 긴 대화를 끊고 싶으면 빨리 그렇게 하겠다고 하던가, 맞다고 해' 그러다 지쳐 나도 모르게 백기를 들고 말때도 있다. 그래서 '이런 과정을 언제까지 겪어야 할까, 그냥 참고 (시키는대로)하면 되는데' 싶지만 그 대화를 한명 두명 시도하려는 노력이 우리가 몸은 늙더라도 생각은 늙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