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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진 Aug 05. 2022

[내돈내책] 피터의 원리 2.

#2부 : 그들은 무능력을 이렇게 말했다

#6장, 누구도 자신의 무능력은 인정하지 않는다. 

결국, 누구나 무능의 단계에 도달해 자신의 결점을 알고 있지만 고칠 수는 없는 상태에 놓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능력은 내 방식과 업무 스타일을 계속 고수할 때 드러난다. 즉, 정해진 길로 더 빨리만 가려고 한다. (주변을 잘 찾아보라!)


1부에서, 유능한 사람은 조직에서 축출된다고 했다. 조직마다 모두 무능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능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능력의 최고치에 있는 사람은 다른 곳으로 건너간다. 그리고 새로운 조직에서 이전의 조직에는 없는 무능의 단계에 이르기를 바란다고 한다. 이것을 강박적인 무능력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유능한 사람들은 현재의 조직에서 성장의 한계(도서에서는 '도전할 만한 일의 한계')를 느끼고 무능력에 대한 강박을 못 이기며 떠나야 할 때를 결심할 때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그렇게 일부러 이동해서 다른 무능력에 도달하는 것보다는 현 조직에 남아 무능력에 도달하기 전까지의 또 다른 매력적인 도전들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무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사례는 많다. 관리자는 승진을 시킨후에야 그 승진이 잘못되었다는 것, 그 자리에서 업무를 수행하기에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 사실을 바로잡지 않는다. 승진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그 자리가 벅참에도 절대 바로잡거나 거절하지 못한다. (그것을 거절하는 것 자체가 밉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부하의 행동은 반항이 될 수 있고 반항은 곧 무능력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생각하는 방법들 중 첫째, 수행 능력이 없어 일을 못하는 사람을 의지가 약하거나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열심히 위로와 충고의 말을 건넨다. (무책임하다. 우리는 이익집단인데 그런 부분이 우리의 이익을 저해한다면 바로 잡아야 한다.) 


그래서 둘째, 고용하는 절차에 능률진단, 직업적성검사 등을 추가해 더 많은 무능의 기준을 추가한다. (조건적 방법으로 취사선택해야 하는 사항들이다. 예로 측정가능한 업이나 사업은 가능하나 대부분 사업들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모두 같은 기준과 잣대로 측정한 결과가 편향되어 있거나 또는 측정하는데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이 걸린다면 꼭, 측정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결과로 직원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다고 느끼지만 직원-직무의 부적합에 따른 무능력은 감소하지 못한다. 

그럼, 이 방법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 (완벽할 순 없지만 그 불일치의 비율을 어느 정도 감소 시키는 데는 그나마 유의미한 방법 아니었을까?) 물론 도서에서처럼 한, 두번의 진단으로 전체를 파악하는 것은 오류지만 지속적으로 시간을 두고 검사해서 확률을 줄여나가거나 고용하는 방식에서의 경력직과 신입사원의 방법을 다르게 적용해 신입사원의 고용 시 능률진단이나 적성검사 정도로 배치 후 다시 검사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그리고 셋째, 경영진단을 받는다. 능률진단을 통해 무능력을 조정해 잠깐 유능해지는 것을 따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경영진단은 연공서열의 영향력을 약화시켜 그 안에서 연줄로 승진하는 사람을 만들며, 무능한 직원이나 부서에 조정자를 넣어 그럴듯하게 변화된 것처럼 보이거나, 더 많은 직원을 고용해 생산성을 높인다. 또한 무능한 컨설턴트를 위촉해 훈련, 평가, 성과급 등의 제도를 제안한다. (그런데, 컨설턴트들도 이 사실-자신도 결국 무능의 단계에 도달한 것-을 알고 있을까? 둘다 무능하지만, 컨설턴트는 잘 되는 것처럼 보이는 회사들의 그럴듯한 예시로 리더를 현혹해 될 수 없는 조직의 모습을 만들어 줄 것처럼 말할 것이다. 모른다고 하면 하던대로 문서만 잔뜩 만들어 최소한 이정도는 해야한다고 겁을 주며 실무자나 관리자의 무능력이 드러나지 않도록 말한다. 결국 자기가 배운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는 무능력이다.)    


그럼, 무능력에 도달한 사람들의 ‘최종승진 증후군’은 승진을 했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징표일까? 

나의 경험으로 과거보다 승진 후 일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왜 이렇게 야근을 많이 하세요?” 라고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한숨을 푹 쉬며 “일이 많아”라고 답했었다. 그 한숨에는 ‘승진하지 못한 너가 승진한 나의 일을 어떻게 알리가 있겠어?’라는 무시나 사다리 위로 올랐기 때문에 이런 일이나 증상은 당연하고 승진한 자만이 갖을 수 있는 증상이라고 합리화 또는 안도하는 것 같았다. 또한 그 일을 자신도 모르는데 일을 많이 준다며, 나에게 본인의 리더를 흉보는 정도의 대답들이었다. 또한, 조직 내 리더들의 행동을 보며 리더십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것이 있는데,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침마다 카톡으로 좋은 글을 매번 보내면서 정작 본인은 글과 일치하는 리더십은 없는 상사. 직원들과 통화를 스피커 폰으로 통화하며 다른 동료가 다 들리도록 알려주는 상사. 내용은 안보고 오탈자만 보는 상사. 지시한 업무를 문서로 가져가면, 마치 다 아는 듯 안 봐도 알고 있다고 하며 문서에 있는 내용을 제대로 보지 않는 상사. 그러면서 놓치면 자신의 실수는 없고 실무자에게 버럭 화내는 상사. 서로 자리싸움 하느라 관리자나 실무자들의 시간만 뺏고 있는 리더.

모두 직원들을 불안하게 하면서 자신의 불안을 숨기는 것, 그런 자리에 올라도 나는, 과연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은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서 창조적 무능력이 주는 행복을 선택해야 할까? 

일부러 어수룩한 행동을 하며 승진을 피해 직장과 개인의 삶의 행복을 찾는 것이 창조적 무능력이다. 그들의 방법은 무능력에 도달했다는 것을 보여주며 최종승진증후군 가운데 한두가지 증상을 일부러 보인다. 또한 일을 직접적으로 망치지 않는 수준에서 무능력을 보여준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승진을 피하려고 하는 모습을 의도적으로 들키지 않는 것이다. 승진을 거절하기란 쉽지 않지만 거절한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살 수 있다. 승진을 피하면 행복이 올까? 언제까지 피하기만 해야 할까? 승진 후에도 그 자리에 적응하기 전까지 누구나 실수하고 시간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나 시간을 주지 않고 타인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강박들이 오히려 무능력을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 완벽한 승진은 없고, 나의 리더도 이미 무능력의 단계에 올랐다면 우리는 누가 더 빨리 무능력해 지는가에 대한 소모적인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창조적무능력을 현재의 상황에 맞게 재정의한다면, 직장이 딱 요구하는 만큼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쓸 줄 아는 것. 다만 이런 행위는 나중에 자신의 덫이 될 것이다.


결과값(디폴트)이 무능력이라면, 무능력에 도달하는 시간, 과정, 단계 등으로 우리의 무능력을 지연시켜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무능력의 기준이 시간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늘 하던 방식에서도 더 잘 되는 방법을 고려한다면 그것은 성장이고, 그 성장이 생각의 유연함을 가져오면 적어도 무능력을 지연시킬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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