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고요함 증후군
인문대학 1층의 작은 전공 강의실은 늘 추웠다. 한여름과 한겨울을 빗겨 간 동안인데도 차디찬 복도 양 옆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강의실은 냉장창고 같았다. 아무도 없는 빈 강의실에 일찌감치 와서 자리를 맡아놓고 앉아있으면 창밖에 나무가 마른 잎사귀를 떨어뜨리는 소리조차 죽은 듯했다. 마치 진공상태의 풍경을 바라보듯 넋나간 채로 강의시간이 오기만 혼자서 기다리곤 했다.
적막이 익숙해지고 이 건물에, 아니면 캠퍼스에, 아니면 지구에, 아니면 이 우주에 홀로 남아 나조차 정물이 된 기분에 사로잡힐 즈음이면 한 남학생이 나무문을 열어젖히고 멀지 않은 자리에 책가방을 내려놓았다. 그 남학생은 눈꺼풀이 항상 아래를 향해 내리 깔려있었다. 눈썹 숱이 많고 얼굴은 좀 납작한 편에 작은 코, 약간 덥수룩한 머리였다. 멋이라곤 별로 부릴 줄 모르는 차림새, 마르지만 조금 다부진 체구, 작은 키의 남학생은 볼 때마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어서 신중해 보였다.
그 학생은 샤프를 손가락 위에 올려서 빙빙 돌리며 책에 무언가를 끄적이거나 페이지를 넘겨보기도 하고 심심하면 화장실이나 휴게실에 다녀오는 것 같았다. 입술을 다물고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로 강의실을 드나들어도 신경이 쓰였다. 혼자만의 조용했던 공간을 타인과 공유하려니 어색한 침묵에 납작하게 깔려 숨이 막혀왔다. 일부러 빨리 온 보람이 없었다.
이런 날이 제법 반복될 무렵엔 나도 적당한 타이밍에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휴게실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아왔다. 그 학생은 나와 비슷한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전공 강의도 겹친 과목이 여러 개였고 공강시간에는 이용자가 드문 2층 논문 열람실에서 마주치기도 했다. 논문 열람실이라는 장소가 아무래도 우리 같은 애들이 선호하는 곳인 것 같아서 그를 거기에서 마주친 게 민망했다. 우리는 서로를 적당히 무시하고 적당히 의식하다가 시간차를 두고 인문대학으로 떠났다. 결국에는 또 같은 전공 강의실에서 맞닥뜨릴 게 뻔했으므로.
적막한 공간을 누군가와 공유할 수밖에 없었던 짧은 십여 분 동안 나는 절반은 괴롭고 절반은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잠자코 있었다. 말이라도 걸어주면, 눈짓으로 인사라도 해주면 금방 친구가 되어줄 수도 있는데 그는 단 한 번도 아는 체하지 않았다. 대학 때는 특히 사교성을 죽이고 다니던 시기라서 나도 그에게 말 붙여 볼 엄두가 안 났다. 길고도 짧은 시간을 실타래마냥 마디마디 풀어내면서 얼마 안 있어 소음과 종식될 순간만 기다렸다.
나는 조용한 공간에서 다른 사람과 침묵하고 있는 상황을 아주 기피한다. 그런 환경이 만들어지면 긴장감에 몸이 굳고 집중이 깨지고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다. 조용한 버스나 지하철에서 낯선 사람이 옆에 앉거나 서있으면 균등하던 호흡이 의식되고 입안 가득 침이 고인다. 삼키는 소리가 너무 클까 봐 삼키지도 못하고 가만히 머금고 있는다. 사람 많은 도서관 열람실도 숨막히는 공간이다. 그래서 일부러 이용자가 많지 않은 높은 층수의 열람실까지 꾸역꾸역 계단을 올라서라도 맘 편한 장소를 찾아갔다. 때로는 깊은 밤 옆에 누워 자고 있는 동생이 신경 쓰일 때도 있다. 한 번은 어느 집에서 그 댁 식구들과 둘러 앉아 밥을 먹었다. 초대를 받고 처음 가 본 자리라 대화가 뜨문뜨문한 순간이면 틀어둔 클래식 음악이 거실을 감돌아 도리어 고요함을 적나라하게 노출시켜 어색하기가 그지 없었다. 낯선 자리에서 낯선 사람과 낯선 대화를 한다는 것만으로 긴장감이 온몸 근육을 꽁꽁 묶어둔 지경이었고 나는 애써 만들어주신 식사를 다 먹지 못하고 남기고야 말았다.
한정된 공간에서의 고요가 지속되면 옆 사람의 존재감이 점점 선명해지는 걸 느끼게 되고, 그럴수록 나는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숨이 막혀온다. 그러다 우연히 검색 중에 'pin-drop syndrome(극심한 고요함 증후군)'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되었다. 오픈사전이나 위키백과에 더 자세한 설명이 없을까 하고 한참 인터넷을 뒤져보았으나 영어사전에 등록된 사전적 의미가 전부였다. 어쨌든 사전에 등재된 단어인 것만 보아도 나와 같은 괴로움에 시달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어디에 호소하지도 못할 특이한 증상일 거라 생각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는데 이 단어를 발견하니 반가웠다. 적막한 공간에서 타인과 함께 할 때 유독 긴장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재미있는 단어를 알린다.
이른 아침 출근 길, 숙연하기까지 한 지하철을 50분은 타야 한다. 누가 뭐라도 떨어뜨려서 와장창 큰소리를 내준다면 세상이 한결 평화로워질 텐데, 지하철은 왜 화장실처럼 배경음악을 틀어주지 않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