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색 Dec 17. 2021

코로나 발발 2년

언제나 시의적절한 때

  2019년 12월, 중국 우한시에서 바이러스성 폐렴이 발생했다. 뉴스로 소식을 접할 때만 해도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한시적인 사건일 거라 여겼다. 곧 우한시에서 사는 사람들이 영상을 찍어 인터넷 올려 실시간 상황을 보여줬다.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중국 정부는 우한시를 고립시켰고 그 안에서는 지옥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울부짖는 사람들이 우한시에 갇힌 가족들을 구해달라며 절규했고 폐쇄된 도시 안의 상황은 날로 악화되었다. 전염성이 높은 바이러스는 쉽게 통제되지 않았다. 결국 국가 경계를 뚫고 순식간에 모든 나라 전파되었다.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막 어지러워졌을 무렵에 내 나이는 서른둘에서 서른셋으로 넘어갔고 뜻하지 않게 직장에서 승진을 했다. 이직한 회사에 입사한 지 만 1년 하고 한 달 정도 찼을 때였다. 또 남동생이 신학교에서 사귄 친구들 사이에 다리를 놓아줘 갑작스러운 만남을 가진 이후로 모임이 발전되어 주말마다 스케줄이 꽉 들어찼다. 나이 탓에 안팎으로 행사도 여간 많아서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 쉬는 시간 없이 업무로 바쁜 주 6일제 회사에서 눈코 뜰 새 없이 일하고도 거의 격주로 교회 청년들과 모임을 가졌고, 때때로 친구들과의 약속, 가족 행사, 교회 행사 등이 우선순위를 매길 새도 없이 달력을 빽빽하게 채웠다.


  금요일 오후 7시가 되면 귀가하지 않고 그대로 야반도주하듯 산과 들이며 바다로 떠났다. 밤샘 술과 이야기와 게임, 새로 사귄 친구들을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져 새벽이 오는 줄도 몰랐다. 어느 때보다 혈기왕성한 시간이었다.


  청춘 놀이에 몰입해있던 탓에 우한 폐렴이 급속도로 전파되어가는 와중에도 크나큰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마스크가 의무화된 3월에도 종종 마스크 착용을 깜빡 잊고 거리에서 서둘러 살 때도 있었다. 생활필수품이라고 하면 없어서 불편을 느껴야 맞는 거지 있어서 불편하면 그게 생활필수품이랄 수가 없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입 가리개 따위를 먹을 때, 집에 있을 때 빼고는 상시 끼고 산다는 게 말이 안 되었다. 그럼에도 아기를 낳은 언니가 산후조리하러 본가에 와서 함께 지내게 되어 누구보다 빨리 마스크에 적응했다. 몸이 약해진 언니와 갓 태어난 조카를 생각하면 아무리 불편해도 마스크부터 써야 했다.


  조카는 지금껏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랐다. 2살밖에 안 먹었는데 길에서 넘어져 무릎이 까지고 피가 나도 우는 법이 없다. 2살짜리의 조그만 얼굴에 헝겊쪼가리만 한 마스크를 씌어주려고 하면 처음에는 겁을 먹고 내빼버렸는데 이제는 밖에 나갈라치면 자기 입을 손바닥으로 치며 '아아' 하고 마스크를 씌우라고 시키고 어른들도 마스크 쓰라고 먼저 나선다.


  미세먼지, 코로나, 거리두기, 방역, 배달, 유튜브, 자원고갈, 아동학대, 자연재해 등등이 최근 2년 동안 우리 사는 세상의 가장 큰 이슈였다. 어디에도 희망적인 뉴스가 없다. 지구는 이제 얼마 안 남았다고 한다. 조카는 이제 겨우 태어난 지 만 1년 하고 몇 개월 되었는데, 세상은 빠르다는 말 이상으로 빠르게 저물어가는 것 같다. 나 살기도 험한 세상을 저리 유약하고 해맑고 천진한 아기가 살아가야 한다니 내가 더 겁이 난다. 아기에게 신신당부했다. "아가, 너는 다른 아무것도 필요 없고 하나님만 신실하게 믿어야 해. 하나님만 바라고 살아야 해." 조카는 '하나님'이 들어간 말만 들어도 이젠 '아멘' 할 줄 안다. 아기가 어설픈 발음으로 '아멘'하는 한 마디에 왜인지 안심이 되어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인다.


  노아가 홍수 심판을 대비하기 위해 방주를 짓는 동안에도, 그리고 홍수 심판이 거의 임박했을 즈음에도 사람들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살아갔다. 시집도 가고 장가도 가고 장례도 치르고 잔치도 벌이고 음주가무를 즐기고 노후대비를 한다고 열심히 부를 쌓고 일을 했다. 사람들은 혼자 방주를 짓는 노아에게 엉뚱한 짓을 하고 있다고, 아주 뚱딴지같은 인간이라며 놀리고 우스워했다. 그 사람들에게는 노아가 아주 이상한 미친 노인네처럼 보였다. 홍수 심판은 사람의 죄가 관영했을 때, 그러니까 죄악이 땅에 가득해서 사람들이 세상 만물의 모든 질서를 파괴하고 제멋대로, 좋을 대로 살며 세상의 원리나 순리도 거스르고 제각각 자기 생각이 옳다고 믿었을 때, 그래서 그 죄가 치달을 대로 치달아 그 이상이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내려졌다. 홍수 심판 이후로는 지구 상의 모든 사람을 몰살시키는 자연적인 심판이 없을 거라 언약하셨고 실제로 그랬다. 그러나 마지막 날은 분명히 올 것이라 했고, 마지막 때에 세상이 어떤 상태, 어떤 모습인지 잘 알려주셨다. 모임을 폐하려는 자들이 나타나고 패륜적인 범죄가 다반사이며 자연계는 파괴되고 거짓말로 남을 속이는 자들이 연약한 사람을 꾀어 잘못된 구원을 전할 것이고, 그 나머지는 노아 시대 홍수 심판 때와 거의 다르지 않다 했다. 누구는 결혼을 하고 누구는 아이를 낳고 누구는 죽기도 하고 병들기도 하고 축제와 파티도 있고 클럽에서 춤을 추고 술집에서 술을 먹고 노래하고 유튜브 영상을 보고 게임을 하고 회사를 가고 아파트 청약을 붓고 그렇고 그런 평범한 일상일 것이다. 그날은 어쨌든 사람이 알지 못하는 날에 도적같이 임한다고 했다.


  코로나라는 질병이 갖고 있는 높은 전염성과 그로 인한 거리두기 방역 방식에 대해서, 지금의 때와 맞물려 둘의 상관관계와 의미를 알고 싶어서 오래도록 고민했다. 내게 개인적으로 있었던 일들, 사회 전체에 공적으로 발생한 사건들, 이 모든 일이 매우 유기적이고 깊은 상관이 있는 것 같았다. 여태 나이를 먹는 동안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적 모임을 처음 갖자마자 코로나가 터졌다. 이 모임은 같은 신앙을 가진 교회 청년들이 사적인 교제를 해보자고 교회의 승인 없이 우리끼리 만들어 약간 우격다짐스러운 면이 있었다. 익스트림 스포츠나 각종 놀이 문화로 매회 모임을 진행했다. 노는 재미에다가 청춘 남녀가 한 자리에 섞이니 모임은 향방 없이 급물살을 타고 마구마구 목적 없이 흘러갔다. 나 역시도 이 모임이 어디로 향해가는지 알 수 없었다. 모임은 금방 해체되었다.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사달이 일어난 것이다. 즐거움도 컸지만 폐해는 더 극심했다.


  시간이 지나고 겪었던 일들이 내게 주는 의미가 갈수록 깊어져 안으로 파고들어 왔다. 내가 할 일은 나를 돌아보는 일 하나뿐이었다. 안쪽 깊은 곳에 숨겨둔 비화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노아가 때가 임박해올 때까지 홍수 심판을 알려 마지막 기회를 주었듯이 코로나를 통해 내가 받은 메시지는 지금이 바로 마지막 기회라는 비보였다. 정신을 차리라고,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고, 놀고먹고 즐길 때가 아니라 임박한 때를 시급하게 준비하고 살아야 할 때라고 말해주었다. 회개하고 화목하고 힘써 모이고, 인생 고락을 염려 말고 영혼을 살릴 일에 몰두해야 할 시기라는 뜻이었다.


  세상이 여전히 평온한 듯 보이고, 별일 없어 보여서 마음이 그렇게 잘 먹어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매일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있다. 청소를 하고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기도를 하고 십계명 강의를 듣고 수업 준비를 하고 말씀 복습을 하고 기도 녹취를 하고 예배하고 가정 예배도 하고 교제를 하고 운동을 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생각을 한다. 반성하고 회개하고 먹고 입고 사는 것에 구애받지 않으려고 생각을 정리한다. 마지막 기회의 때를 살고 있는 거라 생각하면 아직도 한참 모자라다. 이럴 때는 조카 아기에게 해준 말을 나한테 도로 해야 한다. "다른 아무것도 필요 없고 하나님만 신실하게 믿어야 해. 하나님만 바라고 살아야 해."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발발하고 만 2년이 흐른 지금, 모든 일은 언제나 시의적절한 때에 오고 간다는 사실에 놀라고 놀라워하며 받아들이는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pin-drop syndrom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