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도 습작 산문
평소에 아무렇게나 쓰고 제자리에 갖다 두면 그만인 여러 가지 물건들이 있다. 가위는 언제나 그 모양 그대로 변함이 없이 가위이다. 그저 필요할 때 싹둑싹둑 뭐든 잘라내면 그만이다. 아니면 장식품. 장식 이상의 용도가 없는 액자나 병, 세밀한 조형물들도 그대로 두고 보거나 장식하고 치장만 하면 그만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마음을 쓰지 않는 작은 물건들이 고장이 나거나 문제를 일으키면 평소와 달리 그것을 유심히 보고 관찰해야만 한다.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건지를 알아내기 위해 요목조목 살펴본다. 겉면도 보고 속도 보고 뒤집어도 보고 뒤져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고장의 원인을 찾아내고 또 이런저런 연장이나 도구로 여러 번 만지고 돌리고 끼고 해봐야 물건을 고칠 수가 있다. 그때에 비로소 물건의 모양이 어떤지를 세심한 부분까지도 확실히 알게 된다. 처음엔 가위가 덩어리로 보였는데, 가위 안에 든 부품이나 원리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멀리서 숲을 보는 것과 숲 속에 들어가서 나무 한 그루 보는 것이 다르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사람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그런데 언제부턴가는 사람을 유심히 관찰하고 분석도 하고 나중에는 하는 행동이나 표정, 말투, 대화내용까지 따져보게 되었다. 한마디로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즐긴다는 말인데, 사람을 관찰하는 데에도 서투름이란 게 있다. 처음에는 내 식대로, 나를 기준으로 놓고 단정 짓기를 잘했는데 그 결과로 사람들과 종종 싸우게 되었다. 사람을 관찰하려면 우선 그 방법을 배워야 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여동생과 아주 친밀하게 지내는 편인데, 그것에 대해서 종종 시기를 받기도 한다. 특히 언니가 우리 둘 사이를 자주 질투해서 진땀을 뺀 적이 몇 번 있다. 그럴 때마다 언니를 달래며 잘 설명해주어야 했다. 가족과 친해지기는 어떤 면에서는 바깥사람과 친해지는 것보다 더 어렵다. 같은 배에서 나서 같은 환경에서 자랐어도 성격이 완전히 빼닮지 않으면 계속해서 부딪히게 되는 건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나와 여동생도 그랬다. 성격이 다른 것은 물론이고, 관심사나 사고방식도 조금씩 달라서 지금도 언제든지 어떤 계기로든 감정싸움이 벌어질 가능성이 짙다. 그럼에도 내가 그와 친구보다도 더욱 친구답게 지낼 수 있는 것은 그가 내게 많은 것을 알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여동생은 유명한 셋째 딸다운 눈치가 있었다. 둘째인 내가 약삭빠른 꾀가 많았다면, 셋째인 지애는 사람 마음을 알아채는데 도사였다. 지애는 눈치가 너무 빨라서 사는 게 힘이 든다고 투정을 부렸다. 그 사람이 손짓, 발짓, 눈짓만 해도 무슨 뜻으로 그러는지 눈에 번히 보여서 마음속에 안 좋은 생각이 자주 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좋은 것은 표시를 내고 말로 다 하지만 표현하기에 불편한 것은 슬쩍 하다말다하거나 얼굴 표정이나 습관적인 태도로 드러내기 때문에 지애가 보게 되는 것은 거의가 그런 듣기 불편한 무언의 언어였던 것이다. 그래서 지애와 얘기를 하다보면 함께 아는 사람들이 하는 특유의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 거였는지를 그때에서야 알게 되었고, 그런 것을 알아채는 지애가 신통해 보였다. 지애에 비해 다른 사람이 말로 전하지 않는 뜻을 잘 알아채지 못하는 나는 그 특별한 기술이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혼나지 않아도 될 때 혼나고, 싸울 필요 없는데 싸우게 되어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닌 시간을 보낼 때에 지애는 혼날만한 일을 저지르고도 평화롭게 넘어갔고 싸우더라도 금방 화해를 해서 화목을 오랫동안 유지해온 그의 성격은 명랑, 활달 그 자체이다.
나는 지애에게 ‘찾달(찾기의 달인)’이라는 별칭을 지어주었다. 지애는 사람의 마음을 잘 간파하는 것은 물론이고, 세심한 관찰력을 갖고 있다. 이전에는 물건을 잃어버리면 바로 엄마에게 달려가 물건이 어디 갔는지를 물어보았지만, 이제는 ‘찾달’을 부르게 되었다. 나라면 그냥 지나가다 본 것이라 그 물건이 피아노 위에 있었는지 책꽂이 빈 공간에 두었는지 가물가물한 것들을 지애는 척이면 척, 물어보는 즉시 물건이 눈앞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거 거기에 있어.”라고 대번에 답해준다. 정말인가 찾아가보면 -이제는 의심도 안 하지만- 물건은 일부러 갖다 두기라도 한 냥 설명해준 모양 그대로 놓아져있다. 어째서 물건을 이렇게 잘 찾는지 신기해서 지애에게 물어보면 “그냥 지나가다 봤어.”라고 식상한 대답을 해준다. 사실 내가 특별히 물건을 못 찾는 기질이 있기는 하지만 지애가 물건을 잘 찾는 데는 그만한 눈썰미가 있다고 본다. 함께 늘 다니는 길을 걸어도 ‘저기 저런 게 있네.’ ‘언니, 저기 봐. 저거 처음 본다.’ 하는 말을 많이 한다. 그것은 아주 사소한 변화이거나 소소해서 관심이 안 가는 것들이기 때문에 봐도 나는 늘 시답잖게 여겨지지만 가끔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볼만큼 신기한 것들도 있다. 지애의 그런 사소하고 너무나 소소한 기억력은 어릴 땐 몰랐지만 요즘에 와서는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 많다. 떨어져있는 작은 고무줄을 보고 언젠가 치아 교정을 하는 아는 언니가 교정기에 끼우는 고무줄을 떨어뜨렸다고 지나가는 말로 한 것을 기억해 낸다든가, 벌써 몇 년 전에 강아지들이 태어날 때 한 놈이 보를 뒤집어쓰고 태어나서 죽을 뻔했다든가 하는 기억들이 그렇다. 아니면 원래 점이 많아서 점 하나가 더 나도 나조차 깨닫지 못할 내 얼굴에 난 새 점을 보며 점이 하나 더 났다고 말해주는 것도 그렇다. 지애의 그런 기억력은 사람들을 유쾌하게 해줄 때가 있다. 나도 몰랐던 버릇된 행동이나 말투, 신체의 특징을 알려주면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는 것이다. 몇 년이나 살면서도 집에 잘못 지은 부분이 툭 튀어나온 것을 깨닫지 못하다가 당연하단 듯이 “거기 보일러 관을 잘못 넣어서 그래.”하고 말해주면 새삼 내가 너무 둔한 게 아닌지 때늦은 고민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여동생에 대해 따져보면서 나는 너무 사람의 보이는 부분만을 크게 보고 단정 지었던 것 같아 스스로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이라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대하며 살았는데, 어떤 면에서 나는 평생을 가도 지애만큼 잘해낼 수 없는 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림을 그려도, 공부를 해도, 운동을 해도, 기억력에 있어서도 지애는 나보다 한 수 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바뀌었다. 항상 내게 영향을 받기만 해서 줄곧 따라 하기를 잘했던 지애는 언제부턴가 자기만의 개성을 살리려고 노력했고, 내가 보기에 그 결과물들은 내 것보다 훨씬 괜찮았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내가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은 이질적인 느낌을 들게 한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나는 나를 기준으로 놓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던 눈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을 것 같다. 요새는 지애가 보는 방식을 따라 해서, 내가 알아본 상대의 특징을 말해주는 일을 즐긴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아직 자기의 특징을 다 모르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내가 잘 말해주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노력하고 있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며칠 전 언니가 자다가 본인 핸드폰 고리에 달아둔 치렁치렁한 진주 장식물을 망가뜨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시계를 보려고 핸드폰을 들었다가 망가진 진주를 보고 안경도 안 쓴 채 꼼지락거렸지만 끝내 고치지를 못해 얼마간 장식물은 상 위에 덩그러니 놓아져 있었다. 나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들여다보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밥을 차려놓고 화장실에서 한참을 안 나오는 언니를 기다리다가 문득 장식물을 들고 보게 되었다. 진주가 주렁주렁 달린 모양이 포도 같았다. 어쩌다 망가졌을까 궁금해서 자세히 보니 진주는 한 고리 당 두 개씩 달려서 차례대로 둘씩 짝지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별것도 아니지만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라 의외였다. 그리고 왠지 가슴팍 어딘가가 싸늘해졌다. 나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도 들면서 여전히 내가 못 보고 지나치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그 생각에 나는 좀 우울해졌다. 아직 배워야 할 게 바다처럼 아득한 것을 보니 아찔하다.
대학시절 문학강의 과제로 제출했던 산문 중 하나.
오래 전에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니 새롭다.
10년도 넘는 세월 동안 전혀 변하지 않은 면도 있고, 어떤 것은 변했는지도 모르게 변한 면들이 있다.
세월이 도대체 어떻게 흘러간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