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결국, 그리움이었다
갤러리에서 마주한 집
런던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의 별관 갤러리 입구.
하얀색 한옥 앞에 서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나는 얼른 눈을 깜빡이며 주변의 시선을 의식했지만,
이미 내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그 작품은 서도호 작가의 「Rubbing/Loving Project: Seoul Home (2013–2022)」,
그의 어린 시절 한옥을 본뜬 설치 작품이었다.
움직이는 집, 기억을 걷다
전시 공간을 이어 걷다 보면 또 다른 대표작 「Nest/s (2024)」를 만나게 된다.
마치 거대한 한복처럼 펼쳐진 집 속으로 들어서면,
안방에 앉아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
색과 공간이 바뀔 때마다,
관람객은 작가의 기억 속을 함께 걷는다.
서울, 뉴욕, 런던, 베를린
그가 살아온 도시들의 문턱과 복도들이 반투명한 원단으로 연결되어,
한 사람의 삶과 기억이 “움직이는 집”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불려 나온 그리움
내가 울컥한 건 단순히 작품 때문이 아니었다.
그 안에서 내 안의 그리움 이 불려 나왔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얼굴들.
그리운 어머니.
어린 시절 뛰어놀던 친구들과 공간들.
과거와 현재가 겹쳐 한순간에 밀려왔다.
집은 ‘나’를 설명하는 또 다른 색깔이다.
이민 생활에서 집은 늘 머무는 곳 이자 떠나야 하는 곳이었다.
영원한 집은 누구에게도 없다.
잠시 머무는 집, 잠시 나를 담는 그릇.
그러나 그 잠시가 결코 가볍지 않다.
그 안에 담긴 순간은 곧 온전한 나였으니까.
그래서 집은 결국 그리움이다.
그런데 그리움은 언제나 같은 빛깔을 띠지 않는다.
그리움이 삶을 밀어줄 때
그리움은 방향을 정해 주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과거에 묶이게 하여 현재를 놓치게 만들고,
슬픔이 덧입혀 오래 머물면 우울감과 상실감으로 고이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또 다른 이에게는
그리움이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그리운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어서,
그때의 따뜻함을 다시 살고 싶어서,
우리는 오늘을 버티고 또 살아간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날 ‘온전한 나’를 그리워하며
창작으로 바뀐 그리움
서도호의 작품 속에서, 그리움은 새로운 창작의 힘이 되었다.
한옥을 감싸고 흑연으로 문지르는 매 순간,
그의 마음속 깊은 그리움이 작품의 에너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움은 단지 우리 안의 에너지일 뿐이다.
그것을 과거에 묶어둘지,
미래로 이끌어갈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작가의 그리움은 한옥으로 표현되었다.
그렇다면, 나의 그리움은 무엇으로 표현되고 있을까?
에필로그
그리움은 방향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내 안에서 힘이 된다.
과거를 붙드는 끈이 될 수도,
내일을 밝히는 불씨가 될 수도 있다.
서도호의 집은 기억 속에서 다시 지어졌다.
나의 집은, 나의 그리움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지어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