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쿤스의 튤립 앞에서

예술은 때로, 우리를 단순한 기쁨으로 되돌린다.

by 양수경
제프 쿤스 [Tulips], 1995-2004, 구겐하임 미술관 (스페인, 빌바오)



이 작품 앞에 서자 저절로 웃음이 났다.

커다란 조각은 마치 생일 파티 풍선이 모여 있는 듯했고, 반짝이는 표면에 비친 내 모습은 우스꽝스러워 피식 웃음이 터졌다.


그러나 눈앞의 ‘튤립(Tulips)’은 사실 풍선이 아니다.

길이 약 2m, 폭 5m, 높이 5m에 달하는 거대한 조각으로, 재료는 무겁고 차가운 스테인리스 스틸이다. 하지만 표면에 특수한 금속 색소 코팅(metallic chromatic coating)을 입혀 풍선처럼 가볍고 경쾌하게 보이도록 했다. 반짝이는 표면은 마치 거울처럼 주위를 비추며, 끊임없이 빛과 사람을 흡수해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햇살을 받으면 빨강은 와인잔 속 루비처럼, 파랑은 맑은 하늘 조각처럼, 노랑은 따스한 햇살 한 줄기처럼 반짝였다.



웃음을 전염시키는 예술


내 시선은 어느새 작품보다 작품 앞에 선 사람들에게 옮겨졌다.

그들은 서로 사진을 찍으며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작품의 일부가 된 듯했고, 공간 전체가 축제의 분위기로 물들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 작품은 단순한 조각물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웃음을 전염시키고 즐거움을 나누게 만드는 거대한 ‘사회적 무대’라는 것을.


흥미롭게도 내 안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늘 어른답게 굴어야 한다는 긴장감이 풀리고, 숨겨져 있던 동심이 얼굴을 내밀었다. 작품은 내 안에서 오래 잠들어 있던 웃음을 끄집어내며, 어린아이 같은 나를 다시 만나게 했다. 어릴 적 생일날 집안 가득 매달려 있던 풍선을 보며 깔깔대던 기억이 떠올랐다.


금세 시들어버리던 풍선과 달리, 눈앞의 튤립은 바람 빠지지 않는 기쁨처럼 오래도록 지속되는 듯했다.



웃음은 어떻게 퍼져나가는가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미러링 효과(mirroring effect)’라고 부른다.

인간의 뇌 속 ‘거울 뉴런(mirror neurons)’은 다른 사람이 웃는 모습을 보면 마치 내가 웃는 것처럼 반응한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웃음에 자연스럽게 미소로 화답한다.


특히 아이들을 볼 때 저절로 웃음이 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이들의 순수한 웃음이 거울 뉴런을 자극해 기쁨을 전염시키기 때문이다. 예술 작품 또한 하나의 ‘촉발자(trigger)’가 되어 우리의 웃음을 깨우고, 기쁨을 퍼뜨릴 수 있다.



단순함이 주는 치유


나는 본능적으로 난해한 작품보다는 이렇게 단순한 작품에 마음이 끌린다.

아마도 그것은 어린 시절의 즐거운 기억이 우리 마음을 밝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절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가벼웠다.

어른이 되어 수많은 책임과 역할을 짊어진 지금과 달리, 어린 나는 장난스럽고 자유로웠다.

그래서 튤립은 순수했던 나를 다시 불러내어 잊고 있던 웃음을 선물해 주었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현실이 무겁게 내려앉을수록 우리는 더 간절히 밝음을 찾는다. 작은 빛 하나가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반지하 방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햇살 한 줄기에도 “오늘도 살아갈 이유가 있다”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밝음은 우리에게 생명과 소망을 건네준다.


실제로 심리학자 로라 카스텐슨(Laura Carstensen)의 '사회-정서 선택 이론(Socioemotional Selectivity Theory)’도 이를 뒷받침한다. 인생의 시간이 유한하다는 인식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복잡한 지적 자극보다는 순간의 기쁨과 긍정적 정서에 더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미 수많은 문제를 겪고 풀어온 사람은 굳이 또 다른 퍼즐을 찾지 않는다. 대신 꽃 한 송이, 저녁노을, 아이의 웃음 같은 단순한 장면에서 더 큰 위로와 의미를 발견한다.



단순한 기쁨이 주는 힘


오랜 세월 아픔과 갈등을 지나온 이들에게는 난해한 해석보다 순간의 밝음과 생명력이 더 큰 치유가 된다.

힘든 기억은 스크롤처럼 밀어내고, 지금 눈앞의 따뜻한 빛을 붙들고 싶은 것이다.


단순함은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게 하고, 본질적인 기쁨을 회복하게 한다.

결국 사람은 본능적으로 밝은 것, 생명력이 넘치는 것을 좋아한다.


제프 쿤스의 튤립은 바로 그 본능을 자극한다.

무거운 쇳덩이를 풍선처럼 가볍게 바꿔 놓아, 보는 이로 하여금 아이처럼 웃게 만든다.

나 또한 그 앞에서 웃음을 선물 받았다.


예술은 이렇게 우리의 거울 뉴런을 흔들어 깨우며, 잠시나마 세상의 무게를 내려놓게 한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예술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바로 ‘단순한 기쁨’ 임을 새삼 확인했다.



“예술은 때로 우리를 철학자가 아닌 어린아이로 되돌려 놓는다.

그리고 그 순간, 웃음 속에서 삶의 본질을 다시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