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로 서는 연습
어릴 적 나는 늘 “착한 아이”였다.
기분이 나빠도 웃었고, 서운해도 참았다.
누군가의 표정을 먼저 살피는 게 몸에 밴 습관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느 날, 선생님은 나를 ‘반의 도우미’로 세웠다.
지우개를 나눠주고, 친구가 울면 달래주는 아이.
“역시 ○○는 착하네.”
칭찬이 쏟아질수록, 나는 더 열심히 웃었다.
하지만 가끔은 이상했다.
나도 울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넌 착하니까 참아야지”라는 말이
마치 조용한 의무처럼 내 어깨에 얹혔다.
그때는 몰랐다.
그게 사랑받는 방법이라 믿었으니까.
성인이 된 후에도 그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회사에서, 교회에서, 가정에서도
나는 여전히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누군가가 나를 불편해하지 않기를 바라며
내 감정보다 타인의 눈빛에 먼저 반응했다.
그러다 보니, 내 안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나는 누구인가?”보다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볼까?”가
더 중요해진 삶이었다.
하루는 친구의 말 한마디에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 안에는 ‘나’의 자리가 없었다는 것을.
타인의 시선 속에 살면,
언제나 비교의 그림자가 따라온다.
누군가보다 부족한 나,
누군가에게 미움받을까 두려운 나.
그 그림자 안에서는
아무리 빛을 찾아도 따뜻하지 않았다.
그제야 멈춰 섰다.
“남의 빛을 따라 걷는 삶을 이제 그치자.”
빛은 내 밖에 있지 않았다.
내가 진짜 나로 설 때,
그때 비로소 내 안에서 피어나는 것이었다.
사람은 어릴 적 ‘착함’을 통해 사랑을 배운다.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키며 살아남은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찾는다.
나는 오랫동안 타인의 거울에 비친 얼굴로 살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거울 속의 나는 언제나 뒤집혀 있었다.
진짜 나를 보려면,
이제는 그 거울을 내려놓아야 했다.
거울을 내려놓자, 내 안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그날 이후 나는 깨달았다.
여기서 말하는 ‘이기심’은 타인을 해치는 마음이 아니라,
내 삶의 중심을 되찾는 일이라는 것을.
누군가의 기분을 먼저 살피느라
내 마음을 잃어버렸다면,
이제는 나를 먼저 돌보는 쪽으로
방향을 돌려야 했다.
그건 차가운 이기심이 아니라,
내가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따뜻한 용기였다.
‘나로 서는 일’ ―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선택한
이기적인 자유의 시작이었다.
그날 저녁,
햇살이 사라지고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 켜질 때,
나는 처음으로 ‘나’라는 이름을 조용히 불러보았다.
아무도 없는 거울 앞에서
그냥 숨을 내쉬며 말했다.
“괜찮아. 이제 네가 되어도 돼.”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에게 잘 보이지 않아도
그냥 존재해도 되는 자리.
그것이 내가 오래도록 찾아 헤맸던 자유였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타인의 그림자에서 걸어 나왔다.
누군가의 기대를 채우지 못해도
나를 미워하지 않는 법을 배웠고,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
내 마음의 평화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빛이 아니라 그림자에서 시작된 자유,
그건 ‘누구도 아닌 나’로 돌아오는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