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도 간격이 필요하다.
앤 해서웨이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연기한 앤디는,
늘 고개를 끄덕이며 “네”라고 대답했다.
그 한마디에 그녀의 하루가 늘어났고,
그 한마디에 그녀의 밤은 줄어들었다.
미란다의 끝없는 요구와 기대에 맞추기 위해
옷차림을 바꾸고, 매일같이 “네”를 말하며 버텨낸다.
점점 앤디는 화려한 옷장을 얻었지만,
소중한 사람의 마음은 잃어갔다.
스크린 앞에 앉은 나는 묘하게 불편해졌다.
앤디의 “네”가 곧 내 입술에 걸려 있던 “괜찮아요”와 겹쳐졌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자란 많은 이들이
앤디와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가족 안에서 경계를 내어준 자리에는
늘 서운함과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것은 결국 ‘경계를 세우는 방식’을 배우지 못한 대가였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묻기도 전에,
부모는 “먹고사는 데 유리한 전공”을 기준으로 내세웠다.
결혼 후에도 “돈은 이렇게 모아야 한다”는 조언이
지침처럼 따라붙었다.
이건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부부 사이에서도, 형제들 사이에서도, 직장 안에서도
우리는 쉽게 경계를 잃는다.
서로를 위한다는 이름으로,
또는 평화를 지킨다는 이유로,
“괜찮아”라는 말로 불편한 마음을 덮어버린다.
어쩌면 우리 세대가 가장 익숙한 방식이 바로 그것일지도 모른다.
좋은 의도라 해도, 그 친절은 때로 숨을 막는다.
아이를 키우는 일조차
“애는 이렇게 키워야지”라는 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상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야근을 이어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익숙한 말 한마디.
“네가 힘들어도 가족을 위해 참아야지.”
이 말은 사랑의 언어처럼 들렸지만,
그 안에는 경계를 허락하지 않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부모의 바람을 거절하는 일은 곧 불효로 여겨졌다.
그래서 나는 더 자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사람과 글에 관심이 많았지만,
부모의 권유대로 경제학을 택했다.
내 재능과 흥미보다는
‘앞으로 먹고사는 데 유리하다’는 이유가 앞섰다.
그 선택은 결국 나의 시간을 갉아먹었다.
결국 평화를 지키려다,
내 삶의 색이 조금씩 바래 갔다.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바람에는 사랑과 상처가 함께 얹혀 있었다.
건축 일을 했지만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던 아버지.
주변 친척들이 큰 사업을 일구며 성공해 가는 모습을 보며,
그는 알게 모르게 자신을 비교했고,
그 비교는 마음의 그림자가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버지는 내가 더 안정된 길,
더 확실한 길을 걷기를 바라셨다.
그 기대는 분명 나를 향한 사랑이었지만,
동시에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이 묻어 있었다.
그 무게는 결국 나의 선택에도 스며들었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뒤로 미루게 만들었다.
앤디는 처음부터 패션에 관심이 없었다.
그녀의 꿈은 글을 쓰는 것이었고, 잡지는 그저 발판일 뿐이었다.
그러나 세계적인 편집장 미란다의 곁에 서자,
사소한 결정 하나까지 “네”라고 말해야 하는 삶이 시작되었다.
커피 심부름, 끝없는 전화, 새벽까지 이어지는 업무.
“아니요”라는 말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대신 앤디는 더 화려한 옷으로,
더 완벽한 태도로 자신을 무장했다.
하지만 옷장이 채워질수록,
연인과 친구는 곁을 떠나갔다.
나 또한 부모의 기대에 거역하지 못했다.
부모의 가장 자랑스러운 딸이 되었지만,
내 삶은 점점 버거워졌다.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늘 경계는 희미했다.
“좋은 사람”, “편한 사람”이라는 이름은 따라다녔지만,
내가 잃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시간이었다.
내 몸과 마음에 스며든 피로,
숨 막히는 답답함,
어느 순간 무채색으로 바래 버린 나의 일상.
그때 깨달았다.
점점 더 지쳐 관계를 마음속에서 끊어내기 전에,
내 마음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는 것을.
내가 다시 색을 되찾으려면,
경계는 단절이 아니라 숨구멍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온전한 나로서 타인을 만나기 위해
나는 작은 창을 세워야 했다.
그 창을 통해 서로의 빛이 드나들 수 있도록.
경계가 벽이라면 우리는 서로를 가로막겠지만,
경계가 창이라면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그 빛은 예의가 있다.
때로는 정성껏 반응하고
때로는 조용히 지나가도록 한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경계를 인정하며 함께 서는 것이다.”
- 롤로 메이
즉, 사랑은 서로를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를 존중할 때 자라난다는 뜻이다.
“경계란 내가 누구이고, 누구 아닌지를 구분하는 선이다.”
-헨리 클라우드 & 존 타운센트, Boundaries
거절은 불효가 아니라,
나를 지키는 책임의 표현이었다.
거리는 멀어짐이 아니었다.
단절이 아니라, 숨을 고를 수 있는 여유였다.
가까이 다가섰다가도,
때로는 물러서야 관계가 오래간다.
호흡처럼, 파도처럼.
나는 이제 안다.
경계는 벽이 아니라 창이라는 것을.
서로를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빛과 바람이 드나드는 길이라는 것을.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오늘,
내 호흡을 지킬 만큼의 거리를
스스로에게 허락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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