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는 순간, 나는 도시가 아니라 나를 다시 읽게 된다.
여행을 하다 보면 길을 잃는 순간이 많다.
그날은 혼자 스페인 빌바오를 걷고 있었다.
구글지도는 파란 점을 보여주다가 잠깐 멈췄고, 그 잠깐이 길어졌다. 배터리 2%.
나는 괜히 화면 밝기를 올렸다가—아, 어리석게도—핸드폰이 한 번 깜빡이고 조용해졌다.
그 순간부터 여행은 갑자기 다른 장르가 됐다.
‘구경’이 아니라 ‘생존’으로.
아니, 생존이라기엔 좀 오바고(ㅋㅋ), 그래도 그 비슷한 마음. “어디로 가야 하지?”라는 질문이 ‘관광 동선’에서 ‘내가 지금 여기서 괜찮은가’로 바뀌는 순간이 있다.
길을 잃는다는 건, 결국 내가 믿던 통제의 얇은 막이 찢어지는 일이었다.
방금 전까지 나는 일정표의 사람이고, 예약의 사람이고, 다음 목적지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길을 잃는 순간 나는 그냥… 낯선 도시에 서 있는 한 사람이다.
내 말이 통하지 않을 수 있고, 표지판을 오해할 수 있고,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이 틀릴 수 있는 사람.
발바닥이 먼저 피곤해진다.
땀이 애매하게 난다.
목이 마른데, 물을 사려면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때부터 머릿속에서는 작은 잔소리들이 모여 군대처럼 행진한다.
‘왜 미리 저장을 안 해뒀어?’
‘왜 여기서 데이터를 믿었어?’
‘왜 하필 지금 꺼져?’
길을 잃는 순간의 어려움은 꼭 “길”만이 아니다.
오히려 길은 핑계 같고, 진짜는 그 안에서 올라오는 감정이다.
초조함, 짜증, 자책, 그리고 아주 얇은 두려움.
‘큰일’이 날 것 같지는 않은데, ‘작은 일’들이 겹치면 충분히 무서워진다.
어두워질까 봐, 예약 시간을 놓칠까 봐, 내가 이 낯선 도시에서 갑자기 작아질까 봐.
나는 한 번은 골목을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
아무 골목이나 ‘정답’처럼 보였고, 동시에 모두 ‘오답’처럼 보였다.
그때 이상하게도, 내 걸음이 도시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행지의 사람들은 늘 자기 방향을 알고 있다. 나만 여기서, 잠깐 멈춘다.
마치 도시의 흐름에 작은 매듭이 생긴 것처럼.
그때 작은 가게 하나가 보였다.
문 앞에 토마토가 쌓여 있고, 안에서는 누군가가 커피 잔을 닦고 있었다.
나는 “익스큐즈미…”로 시작해서 말을 이어가려다, 결국 입술을 다물었다가 다시 열었다.
영어가 아니라 스페인어로 해야 할 것 같아서. 하지만 그럴수록 더 말이 안 나왔다.
그냥 손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어… 여기… 센터…?” 같은 소리만 냈다.
가게 주인이 웃었다.
그 웃음이 ‘친절’이라기보다 ‘괜찮다’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그는 말 대신 손짓으로 길을 그려줬다.
오른쪽, 두 번, 작은 광장, 그리고 큰 길. 손이 공중에서 지도를 만들었다.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알아들은 척을 했는지, 진짜 알아들었는지는 그때의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도움을 청하는 순간, 나는 다시 사람이 됐다.
일정표의 사람이 아니라, 도움을 받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
길을 찾고 나서도 놀랍게도 마음이 바로 편해지진 않는다.
오히려 그때부터 생각이 따라온다. “내가 왜 이렇게 불안했을까.”
여행에서 길을 잃는다는 건, 내가 나를 어떻게 다루는 사람인지 들키는 일이다.
불안하면 누군가에게 짜증을 내는 사람인지, 말이 없어지는 사람인지,
그 와중에 유머로 숨을 쉬는 사람인지.
동행이 있다면 더 선명해진다.
누군가는 “괜찮아, 그냥 걷자”라고 하고, 누군가는 “왜 네가 지도를 안 봤어?”라고 하고,
누군가는 조용히 앞장서고, 누군가는 뒤에서 체온을 잃는다.
그날의 내가 배운 건 생각보다 단순했다.
길을 잃어도 되더라.
정확히 말하면, 길을 잃는 시간을 ‘실패’라고 부르지 않아도 되더라.
그런데 이상한 건, 그때부터였다.
길을 잃는 순간이 어떤 문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건.
지도와 확신이 사라지는 자리.
내가 가진 말이 잠깐 멈추는 자리.
그 대신, 주변의 모든 감각이 얇게 깨어나는 자리.
사람들은 과학자나 예술가를 “발견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그들이 하는 일은 별게 아닐지도 모른다.
모르는 채로 잠깐 머무는 일.
불확실성을 견디며,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되는 쪽으로 몸을 옮기는 일.
길을 잃는 순간은 겸손을 강요한다.
‘모르겠다’를 인정하고, 타인의 손짓을 믿어보고, 내가 가진 언어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다시 걸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과정이, 여행에서 가장 오래 남는다.
유명한 성당의 내부보다도, 잘 찍힌 사진보다도, 그 가게 주인의 공중 지도—
그 몇 초의 손짓이 더 선명하게 기억난다.
최근엔 집에서 30분 거리 런던에서도 비슷한 일을 했다.
크리스마스 라이트를 보러 친구와 나갔다가, 분명 “한 골목 안”이라는 Kingly Court의 입구를
못 찾아 비 오는 거리를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급기야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위치를 다시 확인한다.
그런데 그게 또… 웃기게도, 말하는 사람은 아는데 듣는 사람은 더 모르는 종류의 설명이었다.
“거기 있잖아, 그 카나비에서… 어, 그 골목… 어쨌든 거기야.”
(그 ‘거기’가 어딘데요…)
결국 우리는 모르는 채로 걷는 법을 배웠다.
당황스러움을 견디는 일이고, 왔다 갔다 지루한 반복을 하며 낯선 숲 같은 도시를 걷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어떤 순간에는 목적지보다 그 ‘헤매는 시간’이 더 많은 것을 남긴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정말 가끔, 도시는 선물을 툭 놓고 간다.
예전에 혼자 길을 헤매다가 펍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멈춘 적이 있다.
궁금해서 가까이 가 보니 그곳은 영국에서 요즘 특히 유명해진, The Devonshire였다.
기네스로 유명한 펍, 심지어 무알콜 기네스 드래프트까지 화제가 됐다는 애기도 들었다.
그날도 우리는 길을 찾다가 말고, 마치 “다시 발견”하듯 그곳을 또 만났다.
계획했던 목적지는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그런 우연이 여행을 진짜로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돌아가는 길에 나는 조금 느리게 걸었다.
이상하게도 그때의 골목은 더 예뻤다.
아까는 “여기 어딘데”만 보였는데,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창문 너머의 생활이 느껴졌다.
길을 잃기 전에는 그게 다 배경이었다. 길을 잃고 나서야 배경이 전경이 됐다.
그래서 나는 여행에서 길을 잃는다는 말을, 이제는 조금 다르게 이해한다.
그건 길을 잃는 일이 아니라, 내가 붙들고 있던 방식 하나를 잠깐 내려놓는 일이다.
그리고 그 내려놓음이, 묘하게 나를 다음 장면으로 데려간다.
다음번에 또 길을 잃게 된다면—분명 그럴 텐데—
그때 나는 어떤 얼굴로 서 있을까.
나는 여전히 “큰일 났다”를 먼저 말할까, 아니면 “괜찮아, 다시 찾으면 돼”를 먼저 말할까.
그리고 그때, 나를 사람으로 되돌려주는 손짓은 또 어떤 모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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