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미래에서 오고, 삶은 현재에 있다

멀리 보는 어른과 발밑을 보는 아이, 그 시선의 차이에 대하여

by 양수경
아이들은 오늘을 살고,
어른들은 내일을 걱정하며 오늘을 놓친다.


여행 중,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에게 시선이 머물렀다.

어른들은 늘 멀리 본다.

지도에 표시된 명소를 찾고, 풍경을 확인하고,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려 애쓴다.

끝내 닿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셔터를 부지런히 누른다.


그때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깔깔거리는 소리.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소리.


나의 시선은 웅장한 풍경보다 작은 아이들에게 머물렀다.

왜였을까.




아이들은 멀리 있는 것을 보지 않는 듯했다.

그들의 시선은 오직 발 딛고 선 땅을 향해 있었다.

작은 돌멩이 하나에 서로 규칙을 만들고,

자갈을 주워 모아 누가 더 멀리 던지나 겨루고,

공원의 잔디 위를 이유 없이 달렸다.

저 멀리의 유적지는

지금 그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듯이.


"얘야, 땅바닥 말고 저기를 좀 봐!

저게 500년 된 성당이야.”

아빠가 아이의 등을 떠밀며 말했다.


하지만 아이의 눈에는

500년 된 성당보다

발 앞을 기어가는 개미 한 마리가 더 경이로웠다.


아이들은 눈앞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딘가에 도달해야 할 이유 없이도 시간을 보낸다.




어른이 된 우리는 왜 늘 멀리만 보는 걸까.

새해가 오면 어김없이 결심을 적는다.

건강, 사랑, 교육, 자기 계발.

계획을 세우는 동안엔 마음이 반짝인다.

제대로 살고 있다는 기분도 들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생긴다.


그러다 지친다.

매일의 삶이 '할 일 목록(To-do list)'에 의해 움직이고,

체크 표시가 늘어나는 만큼

마음의 여유는 줄어든다.

하루를 채우는 칸은 점점 촘촘해지는데,

이상하게도 그 사이사이에 구멍이 생긴다.

마치 오늘이 통째로 빠져나간 것처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되어 자꾸만 멀리 보게 되는 건,

어쩌면 슬픈 본능일지도 모른다고.

아이들이 마음껏 발밑을 보고 웃을 수 있도록,

누군가는 먼저 다가올 비바람을 봐야 하니까.

어른은 아이의 웃음을 지키기 위해

지평선을 향해 서 있는 보초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 망보기의 대가는 가혹하다.

먼 곳을 바라보느라

정작 발밑의 꽃은 보지 못한다.


그날 여행지에서 아이들은

돌멩이 하나로 한참을 웃고,

개미의 행렬을 보며 깔깔거렸다.

멀리 있는 것들이 나를 앞으로 질질 끌고 가는 동안,

나는 내 발밑의 오늘을

얼마나 자주 놓치고 있었을까.




어른이 된다는 건,

멀리 보는 눈을 얻은 대신

불안을 품고 사는 일이다.

불안은 늘 미래에서 오지만,

삶은 언제나 현재에서만 일어난다.


우리는 다시 아이로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어른의 시선으로만 산다는 건,

발밑의 돌과 작은 풀꽃들,

어린 왕자가 사랑했던

그 소소한 존재들을

모른 척하고 지나가야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의식적으로’ 시선을 낮추기로 했다.

내일의 걱정이 밀려올 때,

나는 아이처럼 잠시 쪼그리고 앉아

보도블록 틈새의 풀꽃을 바라본다.


지금 내가 발 딛고 선 이 땅만큼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확인.

그 작은 확인 하나로

나는 다시 내일을 향해 걸어갈 힘을 얻는다.









#길 위에서 배운 것들#여행에세이#인문에세이#아이와 어른 #현재를 사는 법#불안과 삶#삶의 속도#오늘을 살다

#시선에 대하여#삶을 바라보는 시선#일상의 철학#사유의 순간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