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숨결로 쏘아 올린 화살

존 웨슬리가 죽음 6일 전 남긴 편지

by 양수경


그날은 ‘청교도 유적지’라는 거창한 목표보다, 친구들과 런던 시내를 걷는다는 설렘이 더 앞선 날이었다. 목적지가 어디든 상관없었다. 그저 좋은 사람들과 함께 북적이는 거리를 나선다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덩달아 따라나선 길. 마음은 딱 “아, 런던에 이런 데도 있구나” 하는 정도의 가벼운 호기심뿐이었다.


하지만 길은 가끔,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여행자를 데려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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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걷기만 해도 좋았던 날.”


우리는 올리버 크롬웰과 수많은 청교도인이 피 흘리며 다져온 역사의 현장을 거슬러 올라갔다. 왕조차 법 아래 있음을 증명했으나, 끝내 독재의 그림자를 남기고 만 크롬웰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날 내 마음에 더 깊이 들어온 건, 권력의 무상함보다는 비 젖은 런던의 쓸쓸한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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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 남은 권력의 표정과 역사는 늘 건물처럼 서 있었다."



오후 늦게 도착한 번힐 필드(Bunhill Fields).


IMG_0511.HEIC “젖은 바닥, 잿빛 하늘. 런던의 겨울은 이렇게 시작됐다."



런던의 겨울은 유난히 회색빛이 짙다. 비가 한바탕 지나간 뒤의 묘지공원, 바닥은 물기를 가득 머금어 검게 빛나고, 그 위로 갈색 낙엽들이 힘없이 내려앉아 있었다. 촉촉하고, 차갑고, 그리고 더없이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풍경.


그 고요한 산책로에서 낯익은 이름을 만났다. ‘존 번연(John Bunyan)’. 내 인생의 책 《천로역정》을 쓴 사람. 책장 속에만 갇혀 있던 활자가 땅 위의 실체가 되어 내 앞에 서 있었다. 묘한 위로가 되었다. 화려한 비석이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았기에 굳이 돌덩이로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삶 같아서. 묘지 입구에 안내판이 없었으면 그냥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를 만큼 그의 묘는 소박했다.


IMG_0504 2.HEIC “책장이 아니라, 땅 위에서 만난 이름.”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잿빛 하늘과 젖은 돌의 냉기. 하지만 그 쓸쓸함 속에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지는 건, 아마도 그가 남긴 이야기가 여전히 우리 삶의 이정표가 되어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죽음의 땅 위에서도 생명은 질기게 이어지고 있었다. 묘비 틈새로 푸른 풀들이 고개를 내밀었고, 다람쥐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아랑곳하지 않고 묘석 위를 오갔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 '천로역정'의 순례자가 잠든 곳 바로 맞은편에, 또 다른 믿음의 거인이 이웃해 살고 있었다.


번힐 필드 맞은편에 위치한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John Wesley)**의 집과 박물관이었다. 나는 텅 빈 전시실 의자에 앉아 그의 일생을 다룬 영상을 보았다. 낡은 구두, 수십만 마일을 말을 타고 달리며 복음을 전했던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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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음이 아니라, 시간의 무게.”



뻔한 위인전 같은 이야기가 흘러가던 중, 영상 말미에 스치듯 지나간 한 장의 편지가 내 심장을 쳤다.


“John Wesley’s last letter to William Wilberforce.” (존 웨슬리가 윌리엄 윌버포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윌리엄 윌버포스. 거대했던 노예무역 폐지를 위해 싸우다 온갖 비난과 좌절에 부딪혔던 젊은 정치인. 내가 평소 존경해 마지않던 그 이름이 나오자 마음이 급해졌다. 나는 곧바로 전시장 안, 진열장들을 훑었다. 구두도 있고 성경도 있는데… 정작 그 편지가 없었다. 눈을 씻고 다시 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돌아갈 수가 없었다.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안내 데스크로 향했다.

“혹시, 영상에 나온 그 편지는 어디 있나요?”


직원은 멈칫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자기도 모르겠다며,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후 상사로 보이는 분이 나왔다. 그는 내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 재차 확인하더니, 말없이 나를 관람 동선 밖 조용한 공간으로 이끌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서랍을 열었다.


“여기요.”


IMG_0529.heic “기대하지 않았던 만남.”


나는 그 순간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가 정말 이걸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애초에 기대조차 하지 않았는데, 나는 지금 ‘마지막 문장’을 가진 종이 앞에 서 있었다. 얇고 누렇게 바랜 종이 위로, 떨리는 손으로 꾹꾹 눌러쓴 잉크 자국이 보였다.


조명은 어두웠고 내 눈은 침침했지만, 나는 사진을 찍어 확대해 가며 흐릿한 글씨를 한 줄 한 줄 더듬어 읽어 내려갔다. 그것은 단순한 안부 인사가 아니었다. 죽음을 불과 6일 앞둔 87세의 노인이, 거대한 악과 싸우다 지쳐 쓰러지기 직전인 32세 청년에게 보내는 마지막 명령이자 **축복이었다**.


"신의 권능이 그대를 ‘세상에 맞선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contra mundum)’로 세운 것이 아니라면, 나는 그대가 이 영광스러운 과업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종교와 영국, 그리고 인간 본성에 수치스러운 저 가증스러운 악행(노예제)에 맞서는 일 말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대를 이 일을 위해 세우신 것이 아니라면, 그대는 사람들과 악마들의 반대에 지쳐 결국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만일 하나님이 그대 편이시라면 누가 대적하겠습니까? (If God be for you, who can be against you?) 그들 모두가 그대보다 강합니까?

오, 선을 행함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이름과 그분의 능력으로 굳세게 나아가십시오. 이 땅의 태양 아래 가장 비열한 ‘미국 노예제’가 그대 앞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이 일과 모든 일에 당신을 강건케 하시기를 기도하며,

1791년 2월 24일, 밸럼에서 당신의 애정 어린 종, 존 웨슬리"



세상에 맞선 아타나시우스'. 온 세상이 잘못된 길로 갈 때 홀로 진리를 외쳤던 고대 성인의 이름을, 노인은 젊은 정치가에게 붙여주었다. 그 문장들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주변의 소음이 사라지고, 오직 200년 전 침상에서 마지막 힘을 짜내어 펜을 들었을 노인의 거친 숨소리만 들리는 듯했다. 눈물이 주책없이 쏟아졌다.


나는 황급히 밖으로 나왔다. 존 웨슬리의 무덤 앞에서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생각했다. 나는 왜 울었을까. 단순히 역사적 유물을 마주한 감동 때문만은 아니었다.


요즘 나는 나이 듦이 두렵다. 기억이 흐려지고, 취미가 사라지고, 내가 나답게 살던 방식이 무너져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짐이 될까 봐 무섭다. 내게 노년은 ‘상실’과 동의어였다.


그런데 그 서랍 속 종이에는 전혀 다른 노년이 있었다. 죽음이 코앞에 닥친 순간에도, 자기 연민에 빠지는 대신 타인을 일으켜 세우는 태도. 사라져 가는 육신으로 젊은이의 등 뒤를 받쳐주는 단단한 정신.


평생 25만 마일을 달렸던 하나님의 기수는, 이제 침상에 누워 움직일 수 없었지만, 펜 끝으로 쏘아

올린 화살이 되어 윌버포스라는 청년을 다시 전장으로 내보냈다.


훗날 윌버포스는 이 편지 뒷면에 짧게 **'존 웨슬리의 마지막 말(John Wesley’s Last Words)'**이라고 적어 평생을 소중히 간직했다고 한다. 40년 넘게 이어진 긴 싸움에서, 이 편지는 그를 지탱해 준 가장 단단한 버팀목이었다.


결국 웨슬리가 떠나고도 한참 뒤, 윌버포스는 노예무역 폐지라는 기적을 이뤄냈다. 노인의 떨리는 펜촉 끝에서 시작된 격려가 세상을 바꾼 것이다.


그날 존 웨슬리의 삶은 내게 단순한 ‘믿음의 차원’을 넘어, **‘마지막을 향한 자세’**로 다가왔다. 우리는 죽기 전에 무엇을 남길까. 화려한 묘비일까, 잘 정리된 자산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가슴속에 꺼지지 않는 불씨 하나를 심어주는 일일까.


그날 번힐 필드의 겨울바람 속에서 나는 무덤이 아니라, 살아있는 목소리를 만났다. 그리고 그 낡은 종이 한 장이 나의 두려움을 향해 조용히 되물었다.


“당신의 마지막 문장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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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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