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우리

풍경보다 사람이 먼저 떠오르는 나이

by 양수경
나이가 들수록 여행에서 남는 것은
풍경이 아니라,
함께 걸었던 사람이다.


어떤 여행은, 왜 그토록

무엇을 보았는지보다 누구와 걸었는지가 먼저 떠오를까?


젊었을 때 나는 풍경을 느끼기보다

카메라 안에 담기 바빴다.

경이로운 장면을 놓치기 싫어

셔터만 열심히 눌러대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보니 정작 그 순간의 감동은

카메라 바깥에서 흘려보낸 적이 많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여행에서 오래 남는 것은 풍경이 아니라

함께했던 사람들의 표정,

그때 나누었던 대화,

낯선 길에서 부딪치며 웃어버린 에피소드들이었다.




해외에서의 30년 – 이젠 친구가 가족이 되는 시간


해외에서 산 지 30년.

지금 내 곁에서 시간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

나의 친구이자, 가족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한국을 떠나 산다는 것은

늘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낯선 환경에서 나 자신을 다시 세워야 하는 과정이었다.

그 고비마다 내 옆을 지켜주었던 사람들은

언제나 함께했던 친구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언젠가 헤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지금 곁에 있는 이 시간”을

더 귀하게 여기게 되었다.




파리의 여행 – 장소보다 사람이 남았다


오래도록 또렷하게 남아 있는 여행이 하나 있다.

노트르담이 화재 후 다시 개관했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 둘과 파리로 떠났던 여행이었다.


한 친구는 아이들이 엄마 손을 벗어날 만큼 자라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던 때였고,

또 한 친구는 가족의 촘촘한 스케줄에서

드디어 벗어난 귀한 여유의 시간이었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막상 가보니 엘리베이터 없는 4층 에어비앤비였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짐과 함께 올라가며

“아이고… 후…”

서로 부축하고, 짐을 잡아주고,

가쁜 호흡 사이로 터져 나오는 웃음들.


그때 이미 알았다.

“아, 이번 여행은 풍경보다 사람이 더 선명하게 남겠구나.”




언어 폭주 사건 – 말은 달랐지만 웃음은 같았다


에펠탑 야경을 보고 너무 배가 고파

숙소 근처 길가의 중국 식당으로 들어갔다.

한국 샤부샤부처럼 보여

셋이 동시에 “여기다!” 하고 들어간 곳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상황은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변했다.


우리는 배가 고파 급해져 있고,

메뉴판은 죄다 프랑스어고,

서빙하는 아주머니는 중국 분이셨다.


우리가 영어로 물으면

아주머니는 프랑스어로 대답하다가

(우리가 못 알아듣자 답답했는지)

갑자기 중국어로 바뀌고,

그러다 중국어 속에 프랑스어 단어가 섞여 들어간다.


점점 식탁 위의 공기가

“언어 전쟁터”처럼 변해갔다.

말은 자꾸 엇나가고, 우리는 배고프고, 시간은 늦고,

서로의 말은 점점 더 급해지는 그 순간—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영어가 막히는 순간,

우리 뇌 속에서 누군가가

“비상 언어 버튼”이라도 눌러버린 것처럼

각자의 ‘다른 언어 폴더’가 갑자기 열렸다.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친구는

자기도 모르게

“아, 소레와…!” 하고 일본어가 툭 튀어나오고,


나는 태국에서 잠깐 배웠던 태국어가

왜인지 모르게—

아니, 정말 뜻밖에—

그 순간 폭발하듯 튀어나왔다.

아마 내 뇌는 그 순간,

태국어를 내가 아는 중국어쯤으로 착각했던 것 같다.


아주머니는 중국어 + 프랑스어,

친구는 일본어,

나는 태국어,

그리고 옆에 있던 또 다른 친구는

그 언어 난장판을 보다 못해

식당 한가운데서 배를 잡고 쓰러지듯 웃어버렸다.


진짜로, 그날 그 테이블은

국제회의인지, 코미디쇼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말은 하나도 통하지 않았지만

웃음만은 완벽하게 통했다.


결국 우리는

손짓과 표정과 기적 같은 추측력으로

주문을 겨우 해결했고

그날 먹은 음식은

그 여행에서 가장 맛있었던 한 끼로 남았다.


며칠 뒤에서야 알았다.

말이 막히면 뇌는

자신이 가진 모든 언어 회로를

“비상용”으로 동원한다는 것.


우리는 그날,

서로 다른 언어로

한 테이블을 가득 채웠던 셈이다.

아주 기묘하고, 사랑스러운 방식으로.




팁을 못 남겨서 마음에 빚처럼 남은 식당


숙소로 돌아오며

아주머니의 친절함과 우리가 웃었던 순간들을 떠올리다 보니

문득 마음에 남는 것이 있었다.


너무 정신없이 나오느라

팁을 넉넉히 두고 나오지 못한 것.


“내일 다시 가서 드릴까?”

셋이 그렇게 이야기하며 아쉬워했지만

일정 때문에 다시 돌아가진 못했다.


지금도 그 식당을 떠올리면

따뜻한 빚처럼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

여행은 때때로,

마음속에 남겨진 작은 ‘못다 한 인사’까지 추억으로 남는다.


정작 그날

노트르담의 ‘가시 면류관 조각’은 보지 못했지만

그보다 더 귀한 것—

사람과 사람 사이에 태어난 따뜻한 기억을 얻었다.




나이 들며 변한 여행 방식 – 함께 있지만, 각자의 속도로


30대 초반,

우리는 한 침대에 엉켜 자던 시절도 있었다.

불편함보다 함께 있다는 것이 더 좋았던 때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숙소를 고를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건 방 개수다.


각자의 공간이 있어야

서로에게 더 따뜻해지고,

여행도 더 편안해진다.


함께한 친구들의 밤의 루틴도 모두 다르다.

책을 읽고 일기를 쓰는 친구,

잠들 때 방 안의 불빛 한 줄도 못 견디는 예민한 친구,

그리고 나는 노트북을 펴고 글을 쓰기도 한다.


예전엔 이해되지 않던 이런 차이들이

이제는 사람의 고유한 리듬처럼 느껴진다.


“같은 집에 있지만, 각자의 리듬으로 밤을 닫아가는 사람들.”

동행은 서로의 다른 속도를 허락하는 일이라는 걸

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와인으로 기억되는 어떤 우정


와인을 좋아하는 친구는

여행 중에는 꼭 현지 슈퍼에 들러

그날 메뉴에 어울릴 와인을 고른다.


한참을 진열장 앞에서 고민하다가

“오늘은 이거야.” 하고 골라온 그 한 병이

이제는 우리 여행의 작은 의식처럼 되어버렸다.


그 친구는 와인을 정말 잘 안다.

그래서 그와 함께 여행을 가면

자연스럽게 와이너리 투어나 테이스팅 일정이 따라붙는다.


나는 와인을 전혀 모르던 사람이었다.

영국에 처음 왔을 때는

음식보다 비싼 와인을 이해하지 못했고

첫 잔의 텁텁함도 낯설기만 했다.


그런데 그 친구를 만나고 생각이 달라졌다.

‘아, 내가 이 친구와 더 친해지고 싶으면

이 세계를 조금은 견뎌야겠구나.’

그래서 견디고, 배우고, 또 마셔보았다.


어느새 나도

와인의 향과 온도를 조금씩 구별할 줄 알게 되었다.


그 친구는 지금도 가끔 농담처럼 말한다.

“수경이 와인 배우게 하느라

내가 돈을 얼마나 썼는지 알아?”


장난 반, 진심 반.

그 말 안에는 우리가 함께 쌓아온 세월이 배어 있다.


와인은 결국,

이 친구가 내게 건네준 또 하나의 세계였다.

그 세계 덕분에

나는 나의 일상도 조금은 다른 온도로 맛보게 되었다.




에어비앤비의 밤 – 새벽 두 시의 도서관


간단한 음식과 와인 한 병을 두고

잔을 채우다 보면

대화는 자연스럽게 깊어지고

밤은 어느새 새벽 두 시, 세 시가 된다.


가족 이야기,

일과 상처들,

그리고 서로에게 건네던 웃음과 위로들.


그 시간은 마치

서로의 도서관을 잠시 빌려 읽는 것 같았다.


누군가는 이혼을 지나왔고,

누군가는 부모의 죽음을 견디고,

누군가는 평생 떠돌며 뿌리를 찾아 헤맸다.


그 서로 다른 책장들이

조용히 테이블 위에 펼쳐지는 시간.


동행이란,

그저 시간을 때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읽어주는 작업이라는 것을

우리는 여행의 밤마다 배웠다.




다름, 불편함, 그리고 성숙


며칠을 함께 지내다 보면

사람의 민낯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아침형과 느긋 형,

계획형과 즉흥형,

먹는 것에 진심인 친구와

아무거나 괜찮은 나.


친구들은 나를 ‘여자 이순재’라고 부르곤 했다.

TV 없이 살아온 세월 덕분에

처음엔 그 별명의 뜻도 몰랐다.

알고 보니 목적지가 보이면 직진하는 내 성향 때문이었다.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나도 몰랐을 나의 모습이다.


이 다름은 때로 매력이고,

때로는 솔직히 불편함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제 나는 안다.

그 불편함이 나를 성장시킨다는 것을.


사람을 오래 함께 겪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나의 얼굴들.


성숙한 관계는

‘나와 똑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견디고 존중할 수 있는 힘에서 나온다.




나이, 호칭, 그리고 “수경쌤”이라고 불러준 하루


어느 날,

나이 차 스무 살 넘는 친구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수경쌤~”


평소 나는 역할로 불리는 일이 많아

호칭 속에 늘 작은 거리감이 스며 있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내가 그를 부르던 방식 그대로

동등한 동료처럼, 편안한 친구처럼

나를 불렀다.


그 순간, 마음이 폴– 하고 풀렸다.


존칭이 꼭 존중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자연스럽게 건네는 말속에

더 깊은 예의와 따뜻함이 숨어 있을 때가 있다.




길 위에서 만난 너들이 모여 만든 ‘우리’


나이가 들수록

여행에서 오래 남는 것은 풍경이 아니라 사람이다.


함께 오르던 계단,

함께 웃어버린 실수들,

함께 울고 서로를 위로했던 밤들.


길 위에서 만난 너, 그리고 우리.

그 동행이 내 삶을

조금 더 깊고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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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