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함을 견디기로 선택한 시간
초행길 운전대를 잡을 때면 나는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켠다. 내비게이션 앱 웨이즈(Waze)를 연동하고, 약속 시간까지 몇 분이 남았는지, 다음 교차로에서 어디로 꺾어야 하는지 미리 확인해야 마음이 놓인다. 화면 속 파란 선이 분명할수록 불안은 잦아든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길 위에서, 그 ‘예측 가능함’은 나를 안심시키는 작은 질서다.
하지만 인생에는 그런 파란 선이 없다.
한국에서의 20대와 30대를 돌아보면, 나는 그 질서를 강박적으로 만들어내던 사람이었다. 이력서에 빈칸이 생길까 두려워 학원을 기웃거렸고, 1990년대 초 덜컹거리던 지하철 안에서는 토플 단어장을 쥔 채 다음 시험 일정을 계산했다. 계단을 오르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또 다른 계획을 세웠다.
불확실성은 곧 도태라고 믿었다. 눈앞에 결과가 보이지 않는 시간은 하루도 견딜 수 없었다. “다들 그렇게 살아.”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채찍이었다. 결혼도 제때 해야 했고, 대출을 끼더라도 집을 사야 했고, 남들이 다 오르는 그 견고한 궤도에 올라타야만 안심할 수 있었다.
나는 안정이 아니라, 확인을 위해 살고 있었다.
그런 내가 훌쩍 시간이 흘러 낯선 영국 땅에 서 있다. 런던의 짙은 안개만큼이나 이곳의 삶은 그야말로 ‘모호함의 결정체’였다. 이방인으로서 겪는 언어의 장벽은 차치하고서라도 ,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영국의 행정 시스템은 빨리빨리의 생존 모드로 살아온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비자 갱신 서류를 밀어 넣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몇 달을 마음 졸여야 했고, 아파도 병원(GP) 예약 날짜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게다가 중년의 나이에 덜컥 시작해 버린 학업은 당장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알 수 없는, 그야말로 짙은 안개 속을 헤매는 짓이었다. 하지만 정답을 내놓으라며 발버둥 칠수록 고통만 커지는 이 불투명한 나라에서, 나는 결국 짙은 안개 속에 머무르며 불안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얼마 전, 영국에서 번듯하게 직장 생활을 하던 아들이 돌연 이직을 하더니 곧 자기만의 사업을 시작해 보고 싶다고 선언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펄쩍 뛰며 "안전한 궤도에 머물러야지, 왜 모험을 하니!"라며 말렸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에서 불확실성을 껴안고 살아온 시간들이 나를 꽤나 멋지게 바꿔놓은 모양이었다. 나는 한껏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아들에게 말했다
"아직 결혼도 안 했으니 마음껏, 네가 해보고 싶은 걸 다 해봐. 불확실성은 젊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멋진 특권이야. 무언가를 시작할 때 성공할지 실패할지 알 수 없어 불안한 건 당연해. 하지만 그 불안을 뒤로하고, 네 내면의 소리에 철저하게 '이기적으로' 귀를 기울이면서 한 발을 꾹 디뎌보렴."
참으로 우아하고 깨어있는 엄마다운 조언이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돌아서는 순간, 쿵쾅쿵쾅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심리학도 코스프레를 하던 나의 뼛속 깊은 곳에서, 'K-엄마'의 안전제일주의 본능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니, 그래도 그 아까운 직장을 당장 때려치운다고?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이 최고인데! 사업하다 쫄딱 망하면 어쩌려고? 저러다 빚이라도 지면 내가 언제까지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거지? 아휴, 내가 미쳤지. 뜯어말리지는 못할망정 특권은 무슨 얼어 죽을 특권이야!’
겉으로는 '불확실성은 특권'이라며 쿨하게 등 떠밀어 놓고, 뒤돌아서서 아들의 통장 잔고와 나의 노후를 계산하며 식은땀을 흘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솔직히 고백하건대 아무리 내공을 쌓아도 불확실성을 마주하는 일은 여전히 다리가 후들거리는 일이다.
모호함을 견딘다는 건, 득도한 얼굴로 태연해지는 일이 아니다. 속으로는 덜덜 떨리면서도, 당장 정답이 보이지 않는 그 회색 지대에서 서둘러 도망치지 않는 일이다. 답을 재촉하지 않고, 시간을 압박하지 않고, 잠시 머무는 것.
친절한 내비게이션이 없어도, 안개가 걷히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일.
나는 여전히 불안을 느낀다. 다만 예전처럼 불안을 없애기 위해 아무 궤도나 붙잡지는 않는다. 안개 속에서 길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한 발은 디딜 수 있다는 걸 안다.
오늘도 나는 내 안의 호들갑스러운 ‘K-엄마’를 다독이며, 서두르지 않기로 한다. 파란 선이 보이지 않아도, 멈추지 않고 천천히 걷기로.
안개는 여전히 짙다.
그래도 나는, 그 속을 걷는 법을 조금은 배운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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