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나는 결혼하고 사랑이 무엇인지 배웠다.

다시 결혼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또 이 남자를 택할 것이다.

by 바이블

시댁의 좋지 않은 시선에도 나는 24살의 어린 나이에 30살 남편과 결혼했다.다들 내가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고 하지만 우리 언니는 22살, 동생은 나와 같은 24살에 결혼을 했다. 우리 세 자매한테 있어서 결혼은 도피성과 같았다.


결혼하고 가장 좋았던 것은 사랑이 많은 남편덕에 불안정한 내가 그 사랑으로 안정을 찾았고 밤마다 아무 일이 없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떨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부족한 솜씨지만 일을 하는 남편이 끝나고 돌아오면 서툰 솜씨로 된장찌개도 끓여주고 빨래, 설거지, 청소 등등 소소하게 하는 살림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살다 보면 모든 환상이 다 깨진다고 하지만 나는 남편과 살면서 점점 남편을 존경하게 되었다.


남편은 없는 중에도 베풀고 나누는 사람이었고 항상 자기 전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나에게 자기가 신학교에 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당신 같은 사람이 목사님이 되어야지”


내 꿈은 전도사님이었다. 전도사님이 되지는 못했지만 사모가 될 수 있어 기뻤다. 기쁨도 잠시 남편이 학교에 들어가고 일을 그만두면서 재정적 어려움이 찾아왔다.


너무 감사하게도 결혼한 지 4개월 만에 이쁜 천사가 찾아왔다. 크리스마스 2부 12월 24일이었는데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임신테스트기를 했다. 두줄이 나왔고 남편이 교회에 가있을 때라 돌아오면 얘기하자 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집에 돌아온 남편이 길을 걷다가 한 할머니가 파는 핀이 있었는데 나에게 선물해주고 싶어서 사 왔다며 작은 핀들을 나에게 주었다.


남편은 테스트기를 보며 기뻐했다. 우리 둘 다 결혼을 하긴 했지만 한 번도 자녀에 대해 서로 나눈 바가 없었기에 아직 어색하고 신기했다. 우리 첫째 태명은 메리 크리스마스의 메리가 되었다.


아이를 가진 나는 돈을 벌 수 없었다. 다들 알다시피 입덧지옥이 시작되었고 밥냄새만 맡아도 토하고 냉장고를 못 열었다. 살아야 하니 햄버거만 계속 먹었다. 남편이 신학을 시작하고 그 전 직장에서 받은 퇴직금으로 겨우겨우 생활을 이어갔다. 평소에 사람들에게 잘 나누는 남편이 좋았는데, 막상 우리 집이 어려워지니 남편이 누군가에게 나누는 게 싫었다. 남편의 친구가 옆에 있는 건물에서 살았는데, 그 친구에게 쌀을 가져다주고 오래간만에 고기를 먹을 때면 혼자 사는 그 친구를 불러 함께 먹었다.


남편에게는 그 친구 말고도 주위에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았고 정신과 몸이 아픈 친구들도 많았다. 남편이 얻을 수 있는 관계가 아닌 한없이 나눠줘야 하는 관계가 많았다.


나는 세 자매로 자라서 나누는 것보단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사는 사람이었다. 나는 욕심이 많아서 엄마가 간식을 사 오면 그 간식이 썩더라도 절대 언니와 동생을 주지 않았다. 겨울에는 베란다에 작은 냉장고라며 그곳에 모든 음료와 간식을 모아놓고 혼자 마시고 먹었다. 동생과 언니가 내 것을 뺏어먹을까 봐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인데, 없어도 어떻게든 나누어 주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신기하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고 어쩔 땐 싫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남편과 살다 보니 받기만 좋아하던 나는 누군가에게 선물했을 때 그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이 내 행복이 되는 걸 경험했다. 그리고 없으면 없을수록 더 베풀고 나누면 더 채워주시는 은혜들을 경험했다.


목회자의 아내로 사는 건 쉽지 않았다. 결혼해서 정서적으론 안정되었지만 항상 재정과의 씨름이 계속되었다. 결혼하기 전엔 엄마가 때마다 좋은 옷들을 사주었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내 마음대로 옷하나 살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 놓을수록 손에 쥐고 있던 욕심들이 없어지고 손을 펴는 법을 배워갔다.


어느 날은 돈이 없는데 삼겹살이 먹고 싶어서 바닥 걸레질을 하다가 걸레를 던지고 소리쳤다.


“아 진짜 삼겹살 좀 먹고 싶다!!!!!”


그다음 날 예상치도 못한 곳 세 곳에서 갑자기 고기 선물이 들어왔다. 어디에서 돈이 뚝 떨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필요한 때마다 부족하지도 넉넉하지도 않게 채워주심을 경험했다.


목회자 남편을 만나서 고생한다고 말한다. 고생은 했다. 그렇지만 다시 결혼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또 이 남자를 택할 것이고 어려운 길을 걸을 것이다. 나는 내 남편을 통해서 사랑이 뭔지 배웠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디에 가면 작은 사모라고 불린다. 키가 실제로 작기도 하고 어리기 때문에 붙여주신 별명이다. 나는 작은 사모라는 말이 참 감사하다. 어디 가서 내가 사모라는 말을 들어보겠는가? 어려움보다 감사한 일이 더 많다.


요즘 결혼 지옥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나는 많은 젊은 청년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하나님의 가정은 결혼 지옥이 아니라 결혼 천국이라고 작은 천국을 꼭 만들라고 말해주고 싶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주고받는 사랑은 얼마가지 않는다. 그건 계산적이기 때문에 반드시 끝이 나게 되어있다.


내가 손해 보는 거 같아도 내가 더 주는 거 같아도 그 마음을 주면 모든 사람들은 말하지 않지만 사랑을 느끼게 되어있다.


이 시대에 따뜻한 사랑이 너무 필요하다. 바보 같은 사랑이 너무 필요하다.


내가 그 따뜻한 사람이 되길 바라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