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면 우리 집에 들어와 살아야 하는데 너 나랑 같이 살 수 있니?"
나는 1년 동안 중동 한 나라에 단기 선교사로 다녀왔다. 내가 1년 동안 집을 떠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성인이 되고 하나님을 만나면서 술 먹고 밤에 들어오는 아빠가 무섭지 않았다. 내가 유일하게 밤마다 개가 되는 아빠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막을 수 없는 수위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아빠가 좀 나아졌는가? 그렇지 않았다.
어느 날 성인이 된 후 아빠를 막아선 나에게 칼을 가지고 달려왔다. 나를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놀란 내가 문을 닫았고 아빠는 칼로 방문을 찍어댔다. 나는 이젠 한계에 다 달아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 아저씨가 왔다.
아저씨는 내게 물었다.
“아빠를 신고할 수 있는데 그러면 아빠는 감옥에 가실 수 있어. 너는 아빠가 처벌받길 원하니?”
엄마는 나에게
“네가 아빠를 신고하면 우리 가족은 아빠 없이 살아야 해”라고 나를 타일렀다.
마음 같아선 몇 번이고 신고하고 감옥에 넣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정말 편한 밤이 오길 원했다.
하지만 나는 울며 “처벌받기 원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엄마가 너무 애절하게 나를 설득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는 상황에 이 집을 떠난다는 건 나에겐 너무나 큰 결단이었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겠다고 기도했고 엄마에게 잠시 단기 선교사로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나의 모든 선택을 응원해 주는 사람이라 흔쾌히 다녀오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단기 선교사로 가있는 동안 한 달에 한 번만 편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집소식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나는 타지에서 불안에 떨지 않는 밤이 행복했다. 그래도 가족과 남편이 보고 싶었다. 그때 남편은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종종 한국에서 소식이 들려오는데 좋은 성품의 남편이 다른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결심했다.
'한국에 가면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 '
한국에 도착하고 엄마가 조심스레 말을 해주었다. 아빠가 내가 없는 동안 막아줄 사람이 없어서 그랬는지 술을 조절하며 먹었고 그렇게 위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는 이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감사했다. 그 후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결혼할 거야” 엄마는 작은 눈을 크게 뜨며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먼저 상견례부터 추진했다. (나는 작은 거인과 닮아서 이거다 싶으면 막무가내로 시작한다.) 나는 어머님이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교회였고 나는 교회에서 싸가지로 소문이 나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도 추진했다. 이 사람이 내 남편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어머님의 반대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상견례가 왔다. 그날의 공기를 잊을 수 없다. 어머님은 자신의 아들이 성품이 좋기 때문에 좋아하는 여자들이 많다고 말씀하셨고 그걸 듣는 엄마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서로 견제하는 말들이 오갔고, 상견례 후 양가 엄마들은 뿔이 났다. 우리 엄마는 너를 반기지 않는 결혼을 꼭 해야겠냐고 했고(우리 언니도 시댁에서 반기지 않는 결혼을 했기 때문에 엄마가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님은 처음으로 나에게 따로 연락을 하셨다. “00한테 말하지 말고 카페에서 좀 보자.”
나는 지금의 남편에게 말하지 않고 어머니와 처음으로 함께 마주 봤다.
“너네 지금 아무것도 없는데 결혼할 수 있겠니? 너 결혼하면 우리 집에 들어와 살아야 하는데 너 나랑 같이 살 수 있니?”
나는 대답했다.
“아니요 저같이는 못살아요.”
어머니는 당황하셨다. 나는 같이 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상상만 해도 스트레스였다. 지금은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그때 네가 같이 산다고 할 줄 알았다고.. 양가 엄마들이 반대하는 결혼은 쉽지 않았지만 우리 작은 거인은 나를 위해 어머니한테 연락해 우리 집 2천만 원 그 집 2천만 원 애들 기반은 잡아주자고 말했고 그렇게 결혼준비가 시작되었다.
나는 처음엔 어머님이 불편했다. 어머님은 마음을 잘 열어주시지 않고 직설적인 분이셨다. 처음엔 그 마음을 얻어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어머님은 말씀하실 때도 내 눈을 쳐다보지 않으셨고 잘하려고 할수록 나도 실망이 되고 서운했다. 그렇다고 시집살이를 했느냐?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갈 때마다 항상 정성스러운 밥상을 차려주셨고, 아버님이 설거지를 해주셨다. 그리고 때마다 김치를 담가 주셨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어머님을 겪으면서 깨달았다. 어머님은 앞과 뒤가 다른 사람을 싫어하신다. 나는 가식을 내려놓고 솔직해지기로 했다. 그리고 애써서 실망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대하자고 생각했다. 내가 어머님께 솔직히 말하고 관계에 힘을 빼니 우리는 서로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눈과 눈을 마주치고 고민을 털어놓는 사이가 되었다.
결혼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어머님은 나를 인정해 주시고 칭찬해 주신다. (속사랑이 많으셔서 표현을 잘 못하신다.) 이 글의 제목은 마음에 안 드는 며느리였다. 과거형이다. 지금 현재는 다행히도 마음에 드는 며느리이다.
어머님 싸가지로 소문났던 철없던 저를 며느리로 받아주셔서 감사해요. 어머님을 통해 현숙한 여인이 어떤 사람인지 배울 수 있어 감사해요. 어머님이 끓인 된장찌개와 계란찜은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어요. 지금처럼 저희 가정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