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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르네바 Jun 29. 2023

거센 흔들림 후 짓는 웃음

<유레루>, 미와 니시카와


기억이 서랍에 차곡차곡 정리해 놓은 걸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거라면 사람들 사이 사소한 다툼부터 법정에서의 공방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서랍은 자주 어질러지며 크고 작은 충돌로 생겨난 밑바닥의 구멍들이나 서랍칸 사이 틈으로 온갖 것들이 쏟아지고 뒤섞인다. 그리고 그렇게 생겨난 서랍이 수백 수천 칸이라면? 매일을 보고서처럼 기록해 둔 일지 같은 게 있더라도 당장 원하는 순간을 떠올리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유레루(ゆれる)의 영어제목은 <Sway>이다. 원제의 뜻도 '흔들리다'로 같다. 영화 속 흔들림은 다양하게 변주된다. 가장 핵심에 놓인 흔들림은 기억의 흔들림이다. 우리의 기억은 매 순간 흔들리며 시간 속에서 확신은 불확신으로 변해간다. 망각은 축복이라지만 때로는 가장 저주스러운 결말을 낳는다. 기억의 흔들림은 관계의 흔들림으로 전이되니까. 감정 없는 말이 낭만적이고 위안을 주는 말로 남는다면 그 흔들림은 새로운 시작이 된다. 선의가 담긴 몸짓을 포악한 위협이었던 것으로 떠올린다면 그 흔들림은 파괴의 전조가 된다. 유레루의 인물들이 겪는 건 우리가 더 흔하게 겪는 그 종류의 흔들림이다. 그것은 시간 속 기억이 추는 비극의 춤사위, 조롱과 자조를 숨기고 웃는 입꼬리가 만드는 흔들림임이 분명하다.



두 형제 미노루와 타케루, 그리고 치에코. 오랜만에 만났지만 낯익은 편안함 같은 건 없다. 오히려 알은척하려다 멈칫하고 마는 손등처럼 어색한 끊김이 잦다. 시골 동네에서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떠올리면 행복한 추억을 많이 공유한 관계는 아니다. 오히려 벗어나고 싶은 시간이고 공간이었다. 도망에 성공한 건 동생 타케루가 유일하다. 형 미노루와 친구 치에코는 동네에 남았고 타케루에 대한 질투 내지 동경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고 미노루와 치에코 사이 유대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함께 일하는 주유소에서 호흡은 잘 맞지만 그 이상 감정의 교류는 없다. 커다란 강이 갈라낸 듯 서로 다른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세 사람은 비록 어린 시절이라는 다리가 그 사이 놓여있지만 마음 놓고 건널 수 없다.



타케루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치에코는 타케루를 집에 초대하고 둘은 열정적인 섹스를 한다. 이후 당연하다는 듯 저녁식사 준비를 시작한 치에코를 도마 위 잘린 채 남겨진 토마토처럼 남기고 떠나버리는 타케루는 형 미노루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걸까. 미노루가 치에코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는 걸 치에코와 대화하는 미노루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으니까. '버섯만 못 먹던' 과거 타케루는 치에코와 저녁식사까지 할 수 있었을까. 이젠 토마토도 견딜 수 없어진 타케루는 미노루와 치에코 사이 갈피를 못 잡는다.



미노루는 타케루가 치에코에 대해 숨기는 게 있다는 걸 눈치 채지만 전혀 내색을 하지 않는다. 타케루는 그의 온화한 말과 표정에 속고 말지만 미노루 자신은 속일 수 없었다. 이미 흔들림은 시작되었고 누군가 떨어지고 말 것이다.



도마 위 즙이 흘러내리는 토마토만 남긴 섹스가 있고 그다음 날, 세 사람은 함께 계곡에 놀러 간다. 두 형제가 부모와 자주 놀러 가던 계곡이다. 미노루의 모습은 자못 신이 났다. 소년처럼 첨벙거리며 물의 차가운 온도에 놀라고 헤엄치는 물고기에 놀란다. 타케루에 대한 질투심을, 치에코에 대한 배신감을 숨기려고 연기를 하는 걸까. 이 불안한 연기는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미노루 홀로 강속에서 뛰어놀고 치에코와 타케루는 자갈밭에 서 있다. 갑작스레 시작한 치에코의 하소연. 갑갑한 마을을 떠나 타케루와 도시 생활을 할 걸 그랬다는 후회. 세련된 타케루와의 만남이 지금까지 생활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만든 것 같다는, 도전 같은 선언. 전날 밤 치에코가 타케루를 받아들인 건, 타케루를 향한 단순한 열정은 삶에 대한 보다 복잡한 미련 때문이 아니었을까. 치에코의 말에 제대로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강가에 두 사람을 남겨두고 산 위로 올라가 버린다.



타케루는 흔들 다리에 오르고 아래에서 타케루를 올려다보는 미노루와 치에코. 억눌려 있던 세 사람 각각의 혹은 사이의 흔들림이 외면적으로 분명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화려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동생 타케루에 대한 미노루의 질투.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나가는 형 미노루에 대한 타케루의 질투. 촌스러웠던 타케루가 세련된 복장으로 포드를 몰고 나타나 체념하고 살아내던 현실이 견딜 수 없어진 치에코가 타케루를 향해 품은 선망 섞인 질투. 세 사람이 이룬 질투의 삼각형이 허공에 떠 있다.



타케루가 이미 지나가버린 자리에 올라 간 미노루와 치에코는 질투와 선망의 대상인 타케루를 대신하여 차례대로 추락함으로써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하나의 흔들림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리고 시작된 건 그토록 그리던 안정이 아니라 새로운 흔들림이다. 추락의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 이 파국의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가?



추락까지의 과정 속에서 세 사람이 겪어낸 감정의 흔들림은 지극히 개인적이었고 어떤 두 사람 사이에서도 소통과 이해는 없었다. 결국 각자의 자리에 머물렀고 그렇기에 뇌리에 새겨진 그날에 대한 기억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미노루도 타케루도, 다리에서 추락한 치에코도, 추락의 원인과 결과를 다르게 기억할 것이었다. 죽은 치에코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으므로, 법정에 선 우리는 미노루와 타케루의 기억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누구의 말이 진실이며, 진실은 존재하는가? 이 모든 게 장난 같아지는 순간 미노루와 타케루는 서로 다른 결심을 한다. 그 결심 속에 어떠한 거짓도 있을 수 없다. 두 사람 모두 진실을 말하기로 결심했으니까. 하지만 한 사람의 진실은 어디까지나 반쪽짜리다. 나머지 반쪽을 깨닫는 건 모든 일이 다 끝난 이후인데, 자신의 반쪽을 포기했거나 관철시키지 못한 쪽은 상대를 어떤 흔들림 없이 용서할 수 있을까. 그때 짓는 웃음은 완전한 흔들림의 웃음이거나 완전한 균형의 웃음이거나, 둘 중 하나임은 분명할 것이다. 그러니까, 아주 진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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