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huanian Salty Food
여러 가지로 씩씩하게 투병을 하던 누이가 그렇게 허망하게 뜨고 난 후, 집으로 돌아와 쉴틈도 없이 곧바로 Lithuania로 향했다. 그간 몇 군데의 직접방문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방향의 Laser관련 연구소를 찾기란 여간해서 쉽지가 않던 차에, 구 소련에서 핵과 관련된 기술들이 유독 동유럽 국가들에 많이 남아있어서, 찾아 찾아 드디어는 이곳 Vilinus까지 오게 되었던 것.
미국에서 한국으로, 다시 미국에서 이곳으로 오는 길이 너무 고단하고 긴 탓이었을까. 이곳의 어떤 음식을 넣어도 혀가 아리고 짜다. 신기하게도 배는 여전히 고프고(시간으로 따져 거의 2박 3일을 달려왔으니). 몇 군데 실패 끝에, 드디어는 미국에선 들여다보지도 않던 Big Mac(아내는 Chicken Sandwitch)으로 요기를 마쳤다. 이후부턴 맥도널드도 우리의 Soul food List에 올렸고.
Lithuania의 젊은이들도 여실히 서방국가의 욕망을 따르고 있다. 신축한 것으로 보이는 백화점 주위에 곱게 차려입은 젊은 남녀가 즐비한데, 한눈에 봐도 씀씀이가 달라 보인다. 이곳에도 신기술관련한 벤처가 유행이고, 신도신 근처에선 영어가 유창하다. EU에 합류한 후, 값싼 고급인력이 이 욕망에 불을 지폈다. 골목의 고급클럽 앞은 줄이 길게 늘여있고.
Lihuania 출생의 Geringus는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Cellist중의 한 일 것이다. 특히 그와의 Master Class를 고대하는 많은 Cellist 학도들에게는 그의 final touch up은 마치 마이다스의 손처럼 느껴질 수 있겠다. 젊은 Rostropovich로부터 배운 후, 챠이코프스키 콩쿠르의 우승을 거쳐, 그의 손을 탄 많은 젊은 cellist들이 세게 유수의 경연대회에서 두각을 보이고, 이미 유럽 여러 나라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으니. 그가 애절히 노래하고자 했던 것이 발틱해에 늦게 꽃 피운 조국의 독립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