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글자, 눈시울이 붉어진다
회사에 사표를 낸 건 생각보다 조용한 날이었다.
회의가 예정되어 있던 월요일 아침 비가 올 것 같이 적당히 흐리고 분위기는 살짝 다운되어있으며 나는 특별히 억울한 일도 없었다.
그냥 더는 버티는 게 의미 없겠다는 생각이 고요하게 다가온 날.
오늘 회의 어젠다를 바꿔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퇴사라는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이제 진짜 그만두는구나.’
그날 저녁, 퇴근길에 바로 ho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오늘 퇴사 얘기했어.”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텐데 그 말이 입안에서 미끄러지듯 나왔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나는 괜찮다고 했고 그는 대답했다.
“잘했어. 그동안 고생 많았지.”
그 순간, 마음 한구석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는 왜인지 모르게 미안해졌고 눈물이 났다.
나는 꽤 오랫동안 일을 해왔다.
쉼 없이 달려왔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버텼다.
그 성실성은 스스로를 지탱해 주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퇴사를 결심하고 차츰 그 마지막 날이 다가올수록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소득이 끊긴다는 사실보다도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기분이 더 나를 무겁게 눌렀다.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은 ho였다.
그는 내게 단 한 번도 부담을 준 적이 없었고 오히려 "그만둬도 괜찮아", "너부터 챙겨"라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 미안했다.
이 감정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아마도 이 미안함은 내가 살아온 방식에 깊이 뿌리내린 어떤 의무감에서 오는 것 같다.
어릴 적부터 나는 “남에게 폐 끼치지 마라”는 말을 많이 들으며 자랐다.
“네가 스스로 서야 한다”, “네 몫은 네가 책임져야 한다.”
그런 말들이 성인이 된 내 삶에 성실함이란 이름으로 스며들었다.
그래서 이제야 조금 쉬겠다는 결심 앞에서도
나는 먼저 누군가에게 허락을 구하고 심지어 그 허락이 떨어져도 여전히 미안함을 느낀다.
아이러니하다.
내가 나를 위해 내린 결정인데 왜 나는 이렇게 작아져야 할까.
ho는 그런 나를 조용히 안아준다.
“미안해하지 마. 우리가 함께 사는 거잖아.”
그 말이 고맙고, 또 아프다.
그의 그 말 한마디가 내가 지금껏 안고 있던 죄책감을 조금씩 덜어낸다.
그리고 동시에 함께 살아가는 삶이란 무엇인지 다시 묻게 만든다.
‘내가 함께 산다는 건, 책임을 나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서로의 불완전함마저 껴안는 일 아닐까?’
그렇게 나는 조금씩 이 미안함을 놓아보려 한다.
어쩌면 그것은 고백 같기도 하고 조용한 용서 같기도 하다.
퇴사를 앞둔 나는 내가 다시 숨 쉴 수 있는 시간을 벌기로 했다.
그게 무책임한 게 아니라 우리의 삶을 오래 함께 걸어가기 위한 쉼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먼저 이해해 준 사람이 ho라는 사실에 오늘은 미안함보다 더 큰 감정이 올라온다.
고마움...
퇴사는 나만의 결심이었지만 그 결심이 가장 먼저 닿은 사람은 ho였습니다.
삶의 전환점 앞에서 미안함과 고마움이 겹쳐질 때 관계는 조금 더 깊어지는 것 같아요.
이 글은 그 과정을 기록하며 그에게 전하는 고마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