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주부 삶 맛보기
신혼여행에서 돌아왔다.
더 여행을 즐기고 싶었지만 예정되어있는 마지막 주말 출근을 앞두고 잠시 숨을 고르기로 했다.
몸도 마음도 아직은 여행 중이지만... 이내 곧 괜찮아질 거라 믿는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날이었다.
모카를 데리고 오랜만에 산책을 나갔다.
햇살은 초여름답게 뜨거웠고 바람은 미지근했다.
반려견의 꼬리처럼 느긋한 하루가 될 줄 알았다.
나는 퇴사 후 혹은 일이 줄어든다면 그런 나날이 가능할 거라 생각했었다.
강아지랑 천천히 걸으며 나무를 바라보고 커피 한 잔 마시며 책을 펼치고 아무 이유 없이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것.
어쩌면 그런 게 진짜 ‘쉼’이고 ‘삶’ 아닐까 하고.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눈을 뜨자마자 시작된 하루는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의 아침 준비부터 시작했다. 따뜻한 밥을 차리고 함께 식사를 하고 바쁜 출근을 배웅했다.
그리고 곧장 세탁기를 돌리고 그 사이 청소기를 밀고 설거지를 하고 욕실 청소를 했다.
정리하다 보니 오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이따가 강아지랑 산책 가면 커피도 사 와야지”
머릿속으로는 계속 여유를 상상했지만 몸은 쉴 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오후가 되어서야 산책을 나갔다.
땀을 식히며 돌아오는 길엔 다시 ‘저녁 준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를 쉬었다기보다 다른 일터에서 일한 느낌이었다.
돌아보니 오늘 하루 한 번도 가만히 앉아 쉬지를 못했다.
커피도, 책도 여유도 생각 속에만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알았다.
‘가정’이라는 삶의 장면도 결코 한가하지 않다는 걸.
회사 밖의 시간이 ‘쉬는 시간’이 아닐 수 있다는 걸.
문득 마음 깊은 곳에서 질문 하나가 올라왔다.
내가 언젠가 엄마가 된다면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도 벅찬데 아이가 생기면 그 하루의 무게는 얼마나 더 커질까.
내 시간이란 건 존재할 수 있을까 혹은 내 시간이란 이름 아래 모든 게 아이의 시간이 되는 걸까.
주부로 산다는 것 엄마로 산다는 것은 그 안에는 ‘무한한 시간의 여유’가 아니라 ‘멈추지 않는 돌봄’이 있음을 조금씩 깨닫는다.
오늘의 하루는 조용히 말해주었다. 일을 멈춘다고 해서 삶이 쉬워지는 건 아니라고.
그저 다른 종류의 책임이 다른 리듬으로 찾아오는 것뿐이라고.
나는 오늘 그 리듬에 처음으로 발을 맞춰본 것 같다.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벅찼던 쉼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하루.
‘쉬면 좋겠다’는 바람은 종종, ‘다른 종류의 바쁨’으로 다가온다.
이런 하루들이 쌓였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문득 그게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질문이 나를 더 단단하게 해 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