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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Oct 16. 2021

제주 어린이집 적응기

'제주 1년 살이' 세 번째 이야기


새 어린이집에 첫 등원하다


제주에 입도하고 며칠 후부터 우리 집 1호 꼬마(6세)와 2호 꼬마(4세)는 새로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건 어른도 적잖이 스트레스받는 일이다. 우리 아이들이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첫 주는 어린이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짧기도 하고, 아이들도 별다른 저항 없이 잘 다녀오길래 괜한 걱정을 했구나 싶었다. 그런데 둘째 주부터 1호가 아침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어린이집에 가고 싶지 않다고 통곡을 하는 게 아닌가. 2호도 아니고 1호가 그러니까 엄청 당황스러웠다.


우리 집 1호로 말할 것 같으면, 생애 첫 어린이집에 등원할 때부터 엄마에게 손 흔들고 웃으며 들어간 아이였다. 어린이집 문 앞에서 헤어지기 싫다고 울어본 적도 없다. 사회성도 넘쳐흐르는 편이어서 어린이집에서도 늘 주도적으로 놀이를 이끌어가는 편이고, 놀이터, 키즈카페 등 어디에서 누굴 만나도 방금 만난 아이들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재밌게 잘 논다. (말 그대로 핵인싸 스타일인데, 내 자식이지만 나랑 너무 달라서 볼 때마다 그저 신기하다)


반면 2호는 어린이집에 처음 다니기 시작했을 때, 거의 2달 동안 아침마다 울었다. 적응기간 자체가 없었던 1호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막상 들어가면 잘 논다고 하는데, 헤어질 때마다 우니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울음은 줄어들었고, 적응한 뒤로는 어린이집에 잘 다녔지만, 이번에는 적응하는 데 또 얼마나 걸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내심 한 달 안에 적응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예상과 빗나간 현실


그러나 나의 예상과 달리 2호는 약 2주 만에 빠르게 적응을 마쳤다. 아침에 등원할 때 조금 칭얼거리긴 했지만, 새로운 선생님, 친구들과도 잘 놀고, 잘 먹고, 잘 잔다고 했다. 문제는 1호였다. 어린이집에 가고 싶지 않은 이유를 물어보니 새 어린이집에는 '친구'가 없단다. 같은 반 친구들 이름도 잘 모르겠고, 얼굴도 낯설어 힘든 모양이었다. 게다가 신입생은 우리 아이 딱 한 명이고, 나머지 스무 명은 원래 다니던 친구들이어서 소외감도 느끼는 듯했다.


어딜 가나 친구들을 이끌고 다니던 1호가 낯선 아이들 사이에서 쭈뼛거리는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아팠다. 1호가 친구 문제로 고민하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그렇다고 친구 사귀는 걸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줄 수도 없으니, 아이가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주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담임 선생님께서 우리 아이가 친구들의 이름과 얼굴을 빨리 익힐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어려워하는 1호에게 먼저 다가와준 고마운 친구들도 생겼다. (아직도 그 친구만 보면 고마운 마음이 퐁퐁거리고, 친구 부모님이라도 우연히 만나면 절로 허리가 접힌다)


집에서도 어린이집 적응을 돕기 위한 달콤한 보상을 준비했다. 매일 울지 않고, 씩씩하게 어린이집에 가면 일주일에 하나씩 1호가 좋아하는 옥토넛 레고를 선물하기로 한 것. 이런 방법을 좋아하진 않지만, 효과가 확실한 데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어서 눈 딱 감고 약속했다. 다행히 한 달이 지나자, 1호도 울지 않고 어린이집에 등원할 수 있게 되었다.


고난의 적응기간이 지나가고, 아이들은 지금까지 어린이집에 즐겁게 다니고 있다. 얼마 전 2학기 어린이집 부모 상담을 다녀왔는데, 두 아이 모두 어린이집에서 잘 지낸다고 하셔서 감사했다.


1호는 한 학기만에 반에서 놀이를 주도하는 아이가 되었다고 한다. 1호가 있는 날과 없는 날, 교실 놀이 분위기가 다를 정도라고 하니 본래 타고난 기질이란 게 참 무섭다. 2호는 집에서는 막내 노릇 하느라 맨날 '혼자서 못해! 도와줘!'를 외치지만, 어린이집에서는 무슨 일이든 혼자서 척척 잘한다고 한다. 둘째라 마냥 아기 같아서 평소에 자주 도와주는 편인데, 2호의 이중생활에 깜빡 속았다.




아이들은 계속 자란다


제주에 내려오지 않았다면, 아이들은 다니던 어린이집에 계속 다녔을 것이다. 고난의 적응기간 없이 익숙한 공간, 익숙한 사람들 사이에서 편안하고, 안정적인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이런 고민 때문에 잠시 제주행을 망설이기도 했지만, 어차피 그 시간도 영원하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에 가지 않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가는 날이 온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아이는 자라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관계를 맺는 경험을 쌓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변화가 두려워서 새로운 도전을 포기하기보다는,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아이 내면의 힘을 키워주는 편이 낫지 않을까.    


물론 새로운 환경에서 낯선 친구들, 선생님들과 지내는 게 처음부터 쉽진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한 존재다. 적응하는 시간을 거치면서 우리 아이들은 더욱 단단해졌고, 쑥쑥 자라났다. 아이들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이 다르다. 각자 타고난 기질은 바뀌지 않지만, 매일매일이 다르게 느껴질 정도로 쑥쑥 자란다. 어른보다 훨씬 유연하고, 자유롭다.


이제는 어린이집 친구들에게 배운 제주말로 종알종알 둘이 대화도 나누고, 엄마, 아빠에게 어린이집에서 배운 제주의 역사나 문화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렇게 오늘도 아이들에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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