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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Oct 15. 2021

제주에서 1년:  결심은 과감하게, 계획은 치밀하게

제주 1년 살이 두 번째 이야기




우리, 제주에 내려가자


두 번째 육아휴직을 할 시기와 기간은 정해졌고, 그다음엔 1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할 것인지가 고민이었다. 2021년이면 첫째는 6살, 둘째는 4살이 되고, 그 정도 나이면 어디에서 무얼 하든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엔 해외로 나갈까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일과 육아 병행도 벅찬 상황에서 유학 준비까지 하는 건 도저히 무리다 싶어서 깔끔하게 접었다. (곧바로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어차피 안될 일이었다)


그러고 나니 내 머릿속에서는 자연스럽게 제주가 떠올랐다. 언젠가 버킷리스트에 적어뒀던 '가족과 함께 제주에서 1년 살기'도 기억났다. 내가 사랑하는 제주에서 가족과 함께 1년 동안 살아본다면 어떨까?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두근거렸다.


제주는 10년 전, 혼자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매년 두세 번씩 찾는 나의 단골 여행지다. 보통은 한 번 다녀온 여행지에 가고 또 가고 하진 않는데, 제주는 이상하게 갈 때마다 새롭고, 갈 때마다 좋았다. 청량하게 빛나는 바다, 한라산, 멋진 숲과 오름들, 나지막한 돌담과 푸른 밭, 그리고 올레길까지 모든 게 아름다웠다. 그래서 기회가 될 때마다 제주행 티켓을 끊고 날아가 며칠씩 머무르곤 했다. 너무 힘들어서 쉬고 싶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난 곳도 제주였다.


그렇게 제주에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짧은 여행이 남기는 아쉬움도 덩달아 커져만 갔다. 길어야 일주일 남짓한 휴가로는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첫째 육아휴직 기간 동안, 남편과 아이랑 셋이서 도전한 보름 살이 역시 성에 차지 않았다. 그때부터 막연하게 '한 달도 짧다, 1년은 살아봐야지'하는 생각을 해왔던 것 같다.


그러니 내가 육아휴직을 앞두고 '제주 1년 살이'를 결심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제주에 살면서 에너지 넘치는 두 아이와 산과 숲, 바다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그동안 일하느라 아이 키우느라 제대로 돌보지 못한 나 자신을 살뜰하게 챙기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살면서 푹 쉬고, 잘 먹고, 잘 자고, 실컷 읽고, 쓰고, 걷는 시간이 절실했다.  




제주행을 가로막는 장벽들


제주 1년살이는 누구나 꿈꾸지만, 실제로 감행하기엔 이런저런 난관이 많다. 하고 싶다는 사람들은 많아도, 실제로 하는 사람은 적은 이유이기도 하다. 조건도 맞아야 하고, 결단도 필요하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재정적인 부분이다. 맞벌이 부부 기준으로 일단 둘 중 한 명만 육아휴직을 해도 수입이 반토막 나고, 부부가 둘 다 휴직하면 수입이 끊긴다. 육아휴직 급여가 나오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마이너스다.


그렇기 때문에 휴직 기간 동안,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지출을 어떻게 감당할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돈보다 큰 가치가 있다고 믿고, 과감하게 적금 하나를 깨기로 했다.


재정 대책을 세웠다 하더라도 생활의 터전을 옮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남편과 나는 둘 다 제주를 좋아하고, 함께 여행도 많이 다녔지만, '1년 살이'문제에서는 의견이 갈렸다. 남편은 한달살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꼭 1년살이를 해야 하냐는 입장이었다.


물가가 비싸다, 로켓 배송이 안된다, 적응 못하면 외롭다, 심심하다 등등 제주살이에 대한 온갖 우려도 쏟아냈다. 처음엔 남편의 걱정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둘 다 직장 때려치우고 제주로 아예 이주하자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1년만 살아보자는 건데 도대체 저런 걱정은 왜 하나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남편의 이의제기 전까지, 나는 제주살이의 단점에 대해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오로지 장점만 가득한 장밋빛 미래였다. 어떻게 보면 남편 덕분에(?) 단점들을 쭉 훑어보면서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예방주사를 맞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에게는 제주살이의 장점이 훨씬 크고, 단점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나는 제주에 꼭 가야겠는데?' 하는 마음만 강해질 뿐이었다. 몇 개월 간의 끊임없는 설득 끝에 남편도 마침내 제주 1년살이에 동의했다.  




결심은 과감하게, 계획은 치밀하게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1년살이를 위한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알아본 건 아이들이 다닐 어린이집이었다. 공동육아나 숲유치원 등 대안교육을 선택하는 방법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공공보육 시스템 바깥으로 나가면 상당한 비용이 발생한다. 우리에게 그럴 여유까진 없었다. 그래서 일반 어린이집에 보내되,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에 부합하는 곳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찾다 보니 제주 생태유아공동체 어린이집 명단이 눈에 쏙 들어왔다. 안전하고 바른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한살림 등 생협 식자재를 이용하고, 생태교육 프로그램, 숲 체험 프로그램을 주기적으로 운영하는 곳들이었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상당수가 제주시내쪽에 있었다.


명단을 훑어보며 하나하나 검색해보고, 그중에서 두세 군데 추려서 미리 대기 신청을 해두었다. 다행히 11월쯤, 1순위로 대기 신청을 해둔 어린이집에서 내년에 입소 가능하다는 연락이 왔다. 어린이집이 정해지자, 다음 단계로 15분 거리 내에 있는 범위에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집에서 바다는 안 보여요 


보통 제주1년살이를 준비하는 단계에서 가장 먼저 하는 고민이 바로 '어디서 사는 게 좋을까'다. 이 문제에는 정답이 없다. 가족 구성원들의 라이프스타일과 필요에 따라서 최적의 조합을 찾으면 된다. 우리 가족의 경우, 아이들의 입소가 확정된 어린이집이 공항과도 가깝고, 소아과, 마트, 수영장 등 생활 인프라가 잘 갖춰진 제주 시내권에 있었다.


처음엔 '제주까지 내려와서 시내에서 사는 게 맞는 걸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막연히 제주 1년살이를 꿈꿀 때부터 바닷가나 숲 속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있는 단독주택이나 타운하우스에서 자연을 벗 삼아 지내는 게 진정한 제주 라이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며칠 머물다 가는 여행 숙소를 고르는 것과 장기 체류를 위한 집을 구하는 건 기준이 달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적인 생활 동선이 길어지면 아무래도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집에서 바다가 안 보여도 우리 가족 모두가 생활하기 편한 곳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7개월째 살아보니, 역시 우리의 판단이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본격적으로 집을 알아보는 단계에서는 직접 발로 뛰는 게 가장 좋다. 우리는 하루 날 잡고 내려가서 9군데의 타운하우스, 아파트, 빌라, 오피스텔을 둘러보고, 최종적으로 신제주에 있는 아파트로 결정했다. 오래된 아파트지만 리모델링해서 깨끗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뛰어도 눈치 보이지 않는 1층이라서 좋았다.


이로써 1년살이를 위한 중요한 결정과 계약들이 모두 마무리됐다. 입도를 한 달 정도 앞둔 시점이었다. 휴직 계획을 세우고, '제주 1년 살이'를 결심하고, 가족들을 설득하고, 어린이집 알아보고, 살고 싶은 동네 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모든 과정이 수월하진 않았지만, 늘 꿈꾸던 제주살이였기 때문에 힘들어도 버틸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제주에 가져갈 짐 싸기와 제주에서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 만들기. 짐 쌀 때는 힘들었지만, 버킷리스트를 만들 때는 순간순간 설레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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