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대행사에
우연히 합격한 이야기
나만 몰랐던 나의 강점들
나의 첫 직장은 디지털 마케팅 대행사였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분야였다. 마케팅/광고 직군은 공모전이나 대외활동 열심히 한 친구들이 가는 데라고 생각했으니까. 관련 경력도 포트폴리오도 없는 내게 마케팅 대행사의 인터뷰 제안 메일이 온 건 무척 의외였다. 어쩌다 보니 합격했고, 운 좋게도 대형 클라이언트와 협업하며 경력을 쌓았다. 그것을 기반으로 비슷한 일을 하는 자리로 만족스럽게 이직까지 했으니 꽤 잘 끼운 첫 단추였던 셈이다.
처음에는 이게 맞는 단추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입사 후 채용 담당자에게 왜 나를 채용했는지 질문한 뒤에야 그 답을 얻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몰랐던 마케팅 대행사에 채용된 이유를 여기 정리해 본다.
첫 번째. 국어국문학과 출신이라서
국어국문학과 출신이 글 잘 쓴다는 고정관념은 누가 만든 걸까? 알 수는 없지만 이 지면을 빌어 감사인사를 전해 본다. 이전까지 나는 전공이 취업에 도움이 되리라고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국문과의 별명은 그때도 '굶는과'였으니까. 그러나... 글쓰는 사람이 필요해 검색했다는 키워드, 바로 국어국문학과였던 거다. 다행히 고정관념에 들어맞게 글쓰기를 좋아했던 나는 과제 전형을 거쳐 무사히 합격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주로 소셜미디어의 전반적인 관리 업무들을 했다. 대행사 특성상 다양한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따라 롱폼의 대표주자 블로그부터 시작해 숏폼인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까지. 길고 짧은 글을 써내며 왜 글 쓰는 사람이 그곳에 필요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마케팅 지식이 있어서
취업을 준비하며 대기업에서 제공하는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원하는 분야의 직무 수업과 인턴이 연계되어 있어 그 중에서도 모바일 서비스 기획 수업을 들었다. 그렇다. 마케팅 수업이 아니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시장을 분석하고 출시 후 기초적인 모객 전략을 세워보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면접관이 '전통 마케팅과 디지털 마케팅의 가장 큰 차이가 뭐냐?'라고 물었을 때 '디지털 마케팅은 보다 세밀한 타겟팅이 가능합니다.'라는 골자의 대답을 할 수 있었다. 취업 사이트에서 전공 필터링 하나 걸어서 부른 신입이 마케팅 지식까지 갖춘 건 큰 가점 요소였던 것.
세 번째. 관심사가 다양해서
다른 말로는, '잡기에 능해서'라고 써도 될 것이다. 원래도 여기저기 들춰보고 다니기를 좋아했지만 1년 6개월의 취업준비 시간은 나를 고급 잡캐로 만들어놓았다. 디자인을 배워 간단한 수준의 포토샵을 다룰 줄 알고, 인물사진이 취미라 DSLR 카메라도 쓸 수 있고, 커뮤니티 밈과 유행에도 빠삭했던 나. 트렌드를 물어보는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하고 개인적으로 운영하던 블로그도 공개했다. 아마 이게 쐐기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전까지 위의 것들이 나의 역량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국어국문학과는 취업에는 쓸모가 없는 전공에 불과했고, 마케팅 지식은 기획 공부의 곁다리였으며, 다양한 관심사는 남들이 한 우물 파는 동안 내 우물을 찾지 못해 두리번대던 삽질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들이 취직 준비를 끝내줄 동아줄이었다니. 난 그렇게 우연히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리고 6년의 경력을 쌓으며 필요 없는 경험은 없다는 걸, 거듭 확인했다. 당신의 경험은 어디서든 도움이 된다. 당장은 그게 뭘지 몰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우연히 마케팅 대행사에 합격해버린 예전의 나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