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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론 Jan 25. 2024

어학연수 말고 워킹홀리데이 막차를 타는 이유

기대로부터의 자유를 찾아 떠납니다

 워킹홀리데이에 대해 누군가는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가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했다. 괜히 가서 힘들게 고생만 하는 게 아니냐는 거였다.


 사실 이 회사에서 퇴사 이야기를 꺼낸 것은 지금이 두 번째다. 처음 퇴사를 결심했을 때는 어학연수를 가고 싶어서 어학원을 통해 통역 자격증 코스를 추천받아 가격과 개강일까지 알아보았다. 어쩌다 보니 가진 못했지만. 그러나 이번엔 고민도 없이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했다. 그때와 지금 뭐가 다를까?

 그때일과 회사 생활에 무척이나 지쳐있었다. 무언가를 책임지거나 어딘가에 소속되 지겨웠다. 결정적으로 사람이 힘들어서 결심한 퇴사였기에 누군가와 일적으로 부딪힌다는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래서 잠시 노동자 신분에서 벗어나 학생으로 돌아가어학연수가 무척이나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지금은 퇴사 이유가 전혀 다르다. 이곳에서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하기 어렵다는 게 이번 퇴사 이유다. 사람에 대해서는 전에 없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팀으로 이동했음에도 업무에서 성취하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도 치명적인 요소여서 오랜 고민 끝에 퇴사라는 결론을 내렸다.

 결정한 것까진 좋았지만 오랜 고민에 마음이 이미 닳아 있었다. 일에서의 성취를 바라면 그럴 수 있는 곳으로 이직을 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마음에 의심만 커졌다. 내가 할 수 있나? 이전에 다른 회사를 지원하고 면접을 보고 무수한 탈락을 이겨냈던 힘과 열정 언제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 모든 과정을 이미 알고 있어서 더 엄두가 나지 않는 걸지도 몰랐다.


 그래서 안 해본 걸 해보고 싶어졌다.

 한국에서는 내내 글쓰는 사람으로 살았다. 서툰 영어로는 카피라이팅도 콘텐츠 에디팅도 어렵다. 많은 워홀러들이 서비스직에서 일하던데, 어쩌면 나도 할 수 있겠지. 서비스직 일자리를 구하려면 인터넷을 통하지 않고 직접 이력서를 돌리는 게 좋다는데 이력서 100번 돌리는 걸 첫 달의 목표로 삼아보면 어떨까? 한국에선 내내 사무직에 종사한 내겐 불특정 다수의 고객을 직접 응대하는 것도 도전이다. 워킹홀리데이를 가면 할 테고, 동시에 한국에선 절대 하지 않을 일들.

 금방 돌아온대도 좋다. 묵은 미련을 해치워버리는 값으로, 도망갈 곳 없이 배수진을 치고 커리어 성장에 투신할 계기로 이만하면 싼 값이지.


 오늘은 대만인 동료와 밥을 먹었다. 대만에서 3년의 경력을 두고 한국 유학길에 올랐었다는 그녀는 '기대'에서 벗어나보는 것이 분명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말해주었다. 의식하든 아니든 모국에 있는 이상 여기서의 선택은 지금까지 보고 들어온 사회의, 가족의, 스스로의 기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그 따뜻한 응원을 듣자 비로소 떠나는 길에서 앞으로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나에겐 아주 새로운 고생이 필요하다. 그래서 워킹홀리데이를 간다. 기대로부터의 자유를 찾아, 모르는 세상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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