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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론 Feb 13. 2024

당근으로 이사하기

당근도 이사도 초보인데요

 워킹홀리데이를 결정하고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마주하게 되었다.

바로 월세로 살던 자취방을 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냥 나가면 되는 거 아닌가? 계약이 끝나지 않은 채 중도 퇴거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이리저리 검색을 해 본 결과… 그게 아니었다!

 남은 계약 기간 내내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아 끝까지 월세를 낸 사람, 임대인이 협조해주지 않아 몇 개월을 생고생한 각종 후기는 날 당장 걱정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다. 고작 반년을 좀 넘기고 나가게 될 줄도 모르고 2년 계약한 과거의 나를 한 대 때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렇다면 더 적극적으로 세입자를 구해야 했다. 세입자가 직접 매물을 등록할 수 있는 여러 플랫폼을 검색해 닥치는 대로 올렸다. 빛 잘 들어오는 아침에 커튼을 활짝 열어 사진을 찍고, 바닥도 번쩍번쩍 광이 나게 청소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러던 중 당근에서도 부동산 거래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당근을 잘 몰랐다. 물욕 없는 1인 가구로서 당근에서 해본 거라곤 해외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하나 사본 것뿐. 그때 쿨거래를 한 덕에 내 매너온도는 0.1도 오른 36.6도! 쿨거래가 끝나고는 쿨하게 앱을 삭제했었다.(당근, 미안해요!)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앱을 다시 깔아서 부동산 탭에 매물을 등록했다. 영상을 올리면 거래 확률이 높아진다는 말에 한껏 광각으로 구도를 잡아 영상까지 찍어 올렸다.

 다음날 바로 연락이 왔다. 주말에 집을 보고 싶다는 거였다. 그분의 당근 온도는 무려 73도.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왠지 그분에게 집을 넘기고 싶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쓸고 닦으며 깨끗하게 산 집이니 좋은 분이 이어 살면 좋을 거 같았다. 현시대의 '좋은 사람'을 무 자르듯 정의할 순 없겠지만, 당근 73도? 최소한 정말 좋은 이웃일 게 분명했다.


 73도의 그분이 집 보러 온다는 주말이 오기 전까지 다른 플랫폼에서도 연락이 오고, 온갖 부동산에 비밀번호 대공개를 해둔 덕에 많은 사람들이 집을 보고 갔지만 좀처럼 계약이 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다소 초조한 채로 그분을 맞이했다. 내가 집주인이었으면 싸게 드릴 텐데. 왜 고작 임차인이라 그런 호객행위는 못 하는가, 그런 생각을 하며 긴장하던 그때.

 "집이 깨끗하네요. 계약할게요."

 쿨하다 못해 북극의 한기가 맴도는 거래였다. 73도는 역시 아무나 가질 수 있는 온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계약금이 천만 원 단위로 오가는 부동산 거래에도 별 질문 없이 할게요,를 외칠 수 있는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어떠한 경지. 그렇게 나는 당근으로 임차인 구하기에 성공했다. 게다가 직거래라서 복비도 많이 아꼈다. 야호!


 여기서 끝이었다면 이 글의 제목은 '당근으로 임차인 구하기' 였을 것이다.

하지만 집이 나갈 때까지 맨날천날 당근을 들여다보던 나는 '이사/용달' 탭의 존재를 알아내고 말았다. 이전에 이사할 때는 이삿짐 전문 플랫폼에서 계약을 했는데, 용달차 기사님이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불쾌한 말을 하고 설명 없이 추가금액이 청구되어 별로 좋지 않은 경험을 했었다. 커피까지 대접했는데! 솔직하게 후기를 쓰고 싶었지만 여자 혼자 사는 집 주소를 다 아는 건장한 남성에게 그러기에는 무서운 세상이 아닌가.

임차인 구하기 과정을 통해 당근에 대한 신뢰도가 무한정에 가까워진 채로 이삿짐센터도 당근에서 제일 후기 많은 단 한 곳에서만 견적 받고 거기로 결정했다. 당근… 가보자고!

이번 기사님들은 더할 나위가 없었다. 빠르고, 친절하고, 저렴했다.


 이렇게 이사를 하며 내가 당근에 낸 금액은 0원이다. 아니 어떻게 이 모든 서비스가 0원? 너무 걱정되어 검색해 보니 일주일 전에 올라온 따끈한 기사가 있다. 8년 만에 첫 흑자전환을 했다고. 축하드려요 당근.

 중고거래에 흥미가 없으니 이 플랫폼과 연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름에서 '마켓'을 뗀 것이 괜한 일은 아니었나 보다. 이사뿐 아니라 모임도 하고 동네 맛집의 쿠폰도 받을 수 있다니, 이제 다른 기능과도 좀 친해져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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