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되는 사람은 공부를 제일 잘 했던 사람도, 아이큐가 제일 높은 사람도, 돈이 가장 많은 사람도, 힘이 가장 센 사람도 아니다. 사람의 마음을 사고, 그것을 잘 수렴하고, 자기만의 확신을 가지고 미래에 대한 비젼을, 원칙을 가지고 실천하는 추진력을 가진 사람이 지도자가 될 수 있다.
대중은 실체가 없는 존재이다. 대중은 일관성있는 존재가 아니다. 대중이 힘을 발휘할 때는 억압에 대한 저항을 표출하거나 독재적 권력에 대항하거나 외세의 침입에 항전할 때이다. 미래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다.
실제로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비리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실생활과 직접적 관련이 있지도 않고, 자신이 직접적 피해자도 아니었다. 다만, 사는게 불편하고, 힘들고 고단하다 보니 그 울분과 고통이 지도자와 그 측근의 잘못인 것처럼 표출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같은 권력층에 있으면서 하나같이 집권층을 비난하면서 견제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 했던 이들이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자신들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미 자기 잘못으로 국가가 그릇된 모양으로 망가진 부분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일부 권력에 대한 아집과 탐욕이 있는 사람들이 민중의 뜻이니, 백성의 뜻이니 허울좋게 대중을 섬기는 것처럼 포장해서 그 집단적 의사표현과 행동이 자신이 집권해야 하는 정당성의 근거처럼 유세할 뿐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대중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선견지명이 있는 일부 소수에 의해서이다. 부정하고 싶지만, 역사적으로 그것이 사실임은 확인할 수 있다.
국가의 경영이 어려운 이유는 버릴 것이 없다는 점이다. 기업의 운영에 있어서는 능력이 없는 직원은 해고하면 그만이고, 능력이 있는 직원에게는 많은 당근을 주면 되는 문제이다. 하지만, 국가는 한쪽을 윤택하게 하면, 다른 쪽이 불만이고, 다른 쪽에 복지를 실행하면 다른 쪽은 그 비용을 부담할 수 밖에 없는 풍선과 같다.
못난 자식에게 밥을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못난 국민을 버릴 수는 없다. 하지만, 못난 국민은 선거에서 이용당한다.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에게 못난 국민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선거기간 뿐이다. 정권을 쥐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들을 이용해야 하고, 관심을 보여야 한다. 노숙자에게도 한 표는 있기는 때문이다. 그래서, 포퓰리즘이 위험한 것이고, 결코 국가의 실질적 발전은 기대할 수 없는 공약인 것이다.
국가의 최고 지도자는 유권자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것이 선결적인 문제이겠지만, 균형감을 가진 현실직시와 미래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비젼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옳다면, 다수가 부인하더라도 밀고 나가면서 지속적으로 설득하고, 행동으로 믿음을 줄 수 있는 그런 인사여야 한다.
권력의 실체는 늘 변함없이 존재해 왔지만, 권력의 행사자는 늘 변한다. 그리고, 권력의 행사기간은 화무십일홍이다. 권력행사에 대한 평가는 상반된다. 비난받거나 역사적으로 길이 남거나.
권력을 쥐고자 앞서 다투는 이들은 분명 대중보다는 훌륭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 중 단 한명이라도 긴 밤에 창자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과 시름 속에서 고민한 경험이 있거나,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진정한 지도자로 받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