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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그 아버지 모 하시노?"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학창시절 새학기가 되면 연례행사처럼 하는 것이 가정조사였다. 이 시기가 되면 늘 부끄러워 했고, 어떤 선생님은 거수로 집계를 내기도 했는데, 요즘같은 상황에서는 인권침해에 가까운 정도였다.


1. 주거형태
가. 자가 나. 전세 다. 월세
2. 자동차 유무
3. 전화기 유무
4. 소득현황
5. 부모학력, 직업
6. 가전제품현황(TV, 비디오 등등)유무
7. 기타


현재는 인구통계조사를 통해 가사조사를 한다. 그 데이터를 통해서 최저생계비를 책정하고, 각종 복지정책을 위한 예산책정에 있어 기본 데이터로 활용한다.


"너그 아버지 모 하시노?"


영화 '친구'의 한 장면 중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을 때리기 전에 학생에게 묻는 질문이다. 아버지의 직업을 확인한 뒤, 아버지가 힘들게 일해서 공부시키고 있는데, 해당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같은 질문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질문의 실질은 아버지의 직업이 변변치 않을 경우, 자녀에게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아 체벌을 하더라도 큰 부담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교사가 질문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버지의 직업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 내 기억으로는 부끄러움이 전부였던 것 같다. 사업실패로 특별한 직업없이 소일하실 때가 많았기 때문에 번듯한 직종으로 직업을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이 희귀하지만, 아버지 세대는 대학을 나온 경우가 더 적었다. 때문에 아버지의 학력에 대해 답변하는 순간은 그다지 부끄럽지는 않았다.


부모의 직업을 밝히는 것이 때로는 규칙에 의해 금지되기도 한다. 인재를 채용하거나 선발할 때, 선입견이 작용할 수 있고, 그 후광에 의해 차별적 대우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인생이나 직업과 나의 인생과 직업은 관계가 없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지위와 소득을 개선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은 있다. 이 사회의 전반적인 의사표명은 그렇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 아버지의 위세와 지위는 자녀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도 없다.


숟가락 논쟁도 그 연장선상에 있을 것이다. 출발선의 위치가 다른 상황에서 누구나 성실하기만 하면, 숟가락 색깔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한 명분좋은 표어에 불과하다.


제도적으로, 사회 전체가 변화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불쌍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자식들은 체념하는 것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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