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죽음이라는 것이 갈라 놓을 때까지 함께 하기로 맹세한 남녀가 부부이다. 언제나, 항상 함께 하고 싶어 부부가 되지만, 어느 시점부터인가 부부는 각자 제각기 살아갈 방법을 도모하기 시작한다. 이율배반적이고 모순적이라 할 수 있지만, 전부부인할 수만은 없는 현상이다.
부부란 쉬운 듯 어려운 관계임이 분명하다!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세상에 이 사람보다 나와 잘 들어맞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잘 보이는 색안경에 씌여 막상 결혼이라는 것에 진입해 보면, 상당한 판단착오가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관계도 부부관계이다.
수면습관, 배변습관, 음식기호, 여가의 활용, 취미, 청결에 대한 가치관 등 들어맞는 것보다는 차이를 보이는 것이 더 많고, 그 갭은 매우 크다는 것을 깨달아 가는 것이 결혼생활의 대부분인 경우가 많다.
별개의 실존이 하나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부부!
보기에 조화로운 결혼생활을 유지하려면, 그렇게 대외적으로 보이려면 체념과 포기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 휴일에 늘어져 숙면을 취하고자 하는 배우자에게 등산, 싸이클 등 적극적인 신체활동이 수반되는 취미를 권하는 것은 채식주의자에게 스테이크를 권하는 것과 같다.
부부관계에 있어서 다름을 인정해야만 하는 시기가 반드시 온다. 하지만, 그것이 자발적인 판단 하에 이루어지는 경우는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비자발적이고 외부적 요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 부부는 같은 주소지를 사용하는 타인이 되어버린다.
비자발적이고 외부적인 요인이라 함은, 고부갈등, 대화부재, 관심의 단절, 배신행위, 경제적 무능력, 가사분담의 해태 등 상대방이 차이를 보이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수긍을 어렵게 만드는 모든 요소를 말한다.
무늬만 부부이고, 각자도생이 시작된다. 함께 생활하지만, 각자 살아가기 시작한다. 조언이나 충고는 더 이상 효력이 없는 잔소리가 되고, 구속은 정력을 낭비하는 일이 되어 버린다.
부부관계에 있어서도 서로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법이 문제이고, 어느 수준까지 보장하고, 보장받아야 하는지 기준을 설정하기도 어렵다. 서로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배려한다는 명목하에 따로 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일정 부분 그것이 편해진다. 홀로 등산가는 남편에게 밥을 차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아내의 생각은 이것을 입증한다.
각자도생!
각자도생할 것이었다면 왜 결혼이라는 것을 굳이 힘들여 했을까.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둔감해진 미각을 살리기 위해서는 비스켓을 먹어야 한다. 부부만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관계는 없다. 보다 나은 관계를 위해서 자신을 둘러볼 시간과 기회가 필요할 수도 있다. 부부관계의 진가는, 즐겁고 기쁠 때에 드러나기 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위기가 닥칠 때이다.
관심의 표명이 예전과 같지 않더라도, 각자도생이 장기화되어 무늬만 부부인 듯 보여도 세월의 내공을 무시할 수는 없다. 종국적으로 곁을 지켜줄 사람은 부부 이외에 다른 존재는 없다. 오래될수록 루틴해지기 마련이지만 추억의 명장면이 펼쳐지던 그 시절을 기억하며 함께 도모할 삶을 그려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