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초식동물처럼 착하고 온순한 남자를 가리켜 초식남라고 한다. 신조어다. 온순한 성격에 부드러운 이미지를 지닌 남자, 여성스러운 취미나 감수성을 가진 남자, 섬세하고 꼼꼼한 남자 등을 가리킬 때도 초식남이란 말이 사용된다.
기사를 읽다가 딸을 2명 둔 아버지가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소변을 본다는 내용을 접한 적이 있다. 남자는 보통 서서 소변을 보는데, 소변이 튀거나 찌린내가 변기에 남기 때문에 배우자가 가족을 배려하라는 차원에서 앉아서 소변보기를 요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란다.
과거에는 철저한 분업으로 남성이 사냥, 전쟁, 사회활동 등을 맡았고, 집안일은 여성이 맡았다. 남성이 부엌에 들어가거나 설겆이라도 할라치면 어른들이 남자가 할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만류했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산업이 고도화되고 인식의 변화가 생기면서 완력이 중요하지 않게 되고 남녀 분업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남성은 여성성에 더 근접해 왔다. 마쵸적인 매력을 가진 남성보다는 꽃미남이 여성에게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높은 시기를 남성들은 살아가고 있다.
초식남은 자기 주장보다는 타인의 요구를 더 잘 수용하고, 혼자서 즐기는 취미 한두가지는 가지고 있고, 성공이나 특별하게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두는 대상을 가지고 있지 않고, 심각하게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현실적이다.
회사, 사회에서의 물리적인 성공에 연연하지 않고,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특별하게 관심을 가지는 타인도 없고, 지나친 타인의 관심도 선호하지 않는 초식남은 남성이 여성화되어가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초식남은 왜곡된 남성형일 수도 있지만, 현대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남성상일 수도 있다. 여성이 초식남을 선호하는 이유는, 초식남이 순종적이고 온순하기 때문에 다루기 쉽다는 데에 있다. 초식남은 마찰과 갈등을 피하기 위해 큰 거부감없이 요구사항을 수용하는 것이 대체적이다.
하지만, 초식남이 주위 사람들의 요구에 부응하느라 정작 내재적인 남성성을 효과적으로 분출할 수 없다면 폭발이나 폭주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보수적 관점에서 남성과 여성의 분업이 여전히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변해가는 시절을 거스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