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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Oct 04. 2017

FM(field manual)대로 생활하기

법과 생활

사법연수생 시절 법원의 재판방청은 필수과정 중에 하나이다. 미디어를 통해 알고 있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는 것이 기억난다. 처리해야 할 사건이 많기 때문에 사건당 배분할 시간이 상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변호사로 생활하고 있는 지금, 민사소송의 경우 대부분 제출된 서면을 확인하는 것이 변론의 대부분이다.


"원고 대리인 몇일자 준비서면 진술하지요?"
"예"


상당한 시간을 들여 법원에 출석해서 재판순서를 기다린 끝에 해당 사건에 소요되는 시간은 몇분에 불과하다. 물론, 가끔 제출된 서류의 내용에 대해 간략하게 요지를 진술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건은 서면공방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미디어에서 연출되는 것처럼 변호사가 말을 많이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학생들의 법원방청, 사법연수생들의 법원방청이 있는 날에는 재판이 FM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속전속결로 진행되지 않고, 서면의 내용, 제출된 증거의 내용 등을 진술하거나 상대방의 입장 등을 구체적이고 풍부하게 청취하게 된다.


법원 방청객은 대부분 사건의 당사자이거나 변호사들이다. 그러나, 학생, 연수생 등이 방청을 온 경우에는 재판절차가 FM으로 이루어진다. 나 역시 초등학생인 조카 친구들과 학부모들이 방청을 왔을 때, 말을 많이 했던 기억이 있다.


FM대로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시간, 인력 등의 제한으로 이 원칙을 고수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때로는 불편하기 때문에 FM을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해관계 당사자가 있는 가운데 FM대로 재판이 진행되는 것이 사리에 맞는 것인데, 일반인의 법원 방청시 FM대로 재판이 되는 것은 일단 국민의 시선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라고 선해하고 싶다.


우리는 남의 시선이 없을 때 거리에 침이나 껌을 뱉는 용기를 더 쉽게 발휘한다. 그러나, 남의 시선이 있는 상황에서는 그런 행동을 가급적 삼가하게 된다. 그 시선이 심적으로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남이 보든 그렇지 않든 FM으로 생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FM을 고수하는 태도에 대해 고리타분하다거나 융통성이 없다는 편견이 만연하다. 편법, 탈법을 교묘히 활용하는 사람이 능력있어 보이기까지 하다. 때문에 사회 곳곳에 여러 폐단들이 발생하고 누적되어 버린 것이다.


지도층이 FM을 솔선하여 준수하고, 대다수가 이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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