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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Nov 20. 2017

공감 ≠ 고통

일상의 변론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모든 상황에서 승패는 있기 마련이다. 패배한 쪽은 이유 여하를 떠나 고통스럽다. 최선의 노력이 패배로 귀결되었을 때 찾아드는 상실감 역시 견디기 힘들다. 


누군가 가족을 잃거나 재해를 당하거나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한 경우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일 것이다.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에 대해 이성과 감성으로 그 고통이 가져다 줄 슬픔에 대해 어느 수준까지는 공감을 하게 된다. 


하지만, 냉정하게 살펴보면 고통 당사자가 겪는 슬픔, 상실감은 결국 당사자의 몫으로 귀결될 뿐이다. 타인의 공감은 고통과 동질, 동량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감하는 타인이 존재하더라도 고통이 완전히 해소되거나 외로움이 완전히 가시게 되는 경우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질병에 걸리더라도 통증과 완치에 걸리는 시간은 다르다. 공감은 상대방을 위로함에 있어서 최고의 효능을 발휘하는 방법이지만, 고통 당사자 이외의 제3자가 같은 크기와 양의 고통을 느낄 수는 없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당신이 알기나 해!"


공감은 고통 당사자를 제외한 제3자가 그 고통의 정도가 어떠할 것이라는 개략적인 추정에 불과하다. 타인이 자신의 고통을 똑같은 수준과 크기로 느끼는 것은 이성적으로나 감성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고통은 함께 나누면 반으로 줄어든다는 생각으로 어설프게 공감하는 척 하는 것은 오히려 고통 당사자에게 고통을 가중시킬 수도 있다. 공감 당사자 또한 실천할 수 없는 고통의 분담을 함부러 약속해서도 안된다. 어설픈 공감은 고통 당사자의 고통극복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고통을 겪는 당사자 또한 굳건하게 고통을 스스로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목표이다. 자신의 고통을 타인으로 하여금 같이 느끼도록 강요하거나 지나치게 의존해서도 안된다. 


고통과 공감은 같은 내용을 이룰 수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공감은 고통을 이해하고 위로하려는 과정이지 고통의 분배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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