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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Jan 17. 2018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이유

일상의 변론

눈 내린 날 운전을 해 보면 도로에 눈이 치워져 있다. 공도(공로)로 인정된 도로는 제설차와 제설제를 이용해 눈을 치운다. 우리는 안전하게 자동차를 운행할 수 있다. 하지만, 좁은 골목, 연립주택 밀집지역 등의 도로(사도, 사로)를 보면 눈이 치우져 있지 않다. 차들은 물론 사람들도 벌벌 기어다닌다. 눈을 치우더라도 자기 구역 일부에 그친다. 불편은 그 지역 사람들이 감내해야 할 몫이다.


분업은 익숙한 개념이고 삶의 방식이기 때문에 분업의 가치에 대해 잊고 사는 것이 대부분이다. 스스로도 분업의 한 직종에 종사하고 있으면서 말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불편없이 편리를 누릴 수 있는 이유는 분업의 결과 때문이다. 


그런데, 분업화는 유지되면서 분업의 결과와 이익은 편중되는 일들이 발생한다. 이럴 경우 분업에 합의한 구성원들은 불만을 품게 되고, 심화될 경우에는 분업, 즉, 사회체계가 무너질 수도 있다. 


대기업의 이익은 소비자로부터 발생한다. 부자의 부는 그에게 분업 참가자들이 돈을 주었기 때문이다. 공무원, 정치인들은 대다수의 구성원을 대신해 공무를 처리하고 그 대가로 구성원의 돈 중에서 일부를 지급받는다. 


분업의 결과물이 정당하고 공정하게 배분되는 것에 대체로 동의한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어느 분업집단이나 분업 종사자에게 그 결과가 편중되는 것은 불만이다. 


기업이 사회적 참여를 해서 결과 중 일부를 소비자에게 반환해 주는 것, 부자가 기부를 하거나 사회봉사에 적극 참여해 자신에게 돈을 지급해 준 사람들에게 다른 형태로 보상하는 것, 공무원, 정치인이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면서 주어진 봉급에만 만족하며 청렴하고 성실하게 공무를 수행해야 함으로써 세금값을 하는 것은 분업유지를 위한 것이라는 당연한 결론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과 부자가 소비자와 돈을 준 사람을 외면하고, 공무원과 정치인이 자신을 우월적 존재로 여기면서 이기적으로 변한다면 분업에 참가한 다수로부터 이익과 권력을 얻은 후 그 원천을 외면하는 것으로, 다수 당사자는 더 이상 기업의 제품을 소비하지 않을 것이고, 부자에게 돈을 주지 않을 것이고, 공무원과 정치인에게 세금과 표를 주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이유가 가시적인 배분의 문제만은 아니다. 인간은 정서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소비자, 돈을 준 사람, 세금을 납부하거나 투표한 사람들에 대한 정서적 교감이 반드시 필요하다. 


'공' 모양의 분업이 아니기 때문에 하부에 위치한 분업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은 배분과 함께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누군가 눈을 치웠기 때문에 안전하고 편리하게 운전할 수 있다. 기업, 부자, 정치인 등은 누군가 더불어 살아 주었기 때문에 현재 상태를 얻게 된 것이다. 그 누구를 위해 배려와 관심을 기울인다면 꼬독한 도로를 달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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