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지금 당장 굶지 않고 배불리 먹을 수 있음에도 걱정을 한다. 내일, 한달 후, 1년후, 10년후 지금처럼 먹을 수 있을지 걱정한다. 그리고, 최소한 지금처럼 살 수 있을지 그 확실성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해진다. 걱정에 대한 일정 수준의 해결책을 찾지 못 할 때, 불안이 밀려온다. 행복한 현재 이 순간에 충만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
미래에 대한 걱정은 불특정한 시점에서 발생여부가 불확실한 사건, 상황에 대한 불안을 현재 시점에 끌어다가 일정 부분 현재의 행복을 감소시키는 인간만이 가진 독특한 자초행위이다.
의식적으로 걱정을 하는 이유는, 행복감을 유보하면서 미래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희망 때문이다. 하지 않는 것보다 걱정한다면 막연한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함으로써 예측하지 못 했던 불운한 상황을 모면하거나 최소한의 피해로 방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기인한다.
인터넷 메일, SNS을 통해 보낸 메세지를 상대방이 읽고 있지 않으면 조바심이 생긴다. 기술이 삶의 속도를 가속화하면서 여유는 감소하고 불안은 증가했다. 때문에 행복은 실체도 없고, 과연 그러한 것이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되어 버린다.
미실현된 불안 때문에 실행 중인 행복을 의도적으로 감소시키는 행위는 인간만이 한다. 걱정을 지속적으로 유지한다고 해서 명백한 해답을 얻지도 못 한다. 다만, 걱정을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타인과 비교해 볼 때 경쟁에서 덜 뒤쳐지고, 깨어있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가속화된 삶의 속도는 빈번하게 불안감을 준다. 자신은 항상 변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체되어 있는 것만 같다. 삶의 변화 속도를 개인의 변화 속도가 따라잡지 못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걱정을 하되 답을 내지 못 했다고 해서 지나치게 불안에 빠지면 안된다. 미래의 어느 순간 절망에 빠질 수 있게 되더라도 그것은 그 시점에서 겪어야 할 문제다. 지금 다소 행복하다면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낙천과 긍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