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친구따라 강남간다'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분명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타인에게 이끌려 어떤 일을 하게 되거나 특정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경우이다. 이 표현은 대체로 원하지 않던 결과가 되거나 좋은 결과를 얻지 못 했을 때 사용빈도가 높다.
학창시절을 돌이켜 보면 선생님이나 부모님으로부터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들은 것 같다. 그 말 속에는 '배울 점이 하나라도 있는 친구', '공부를 잘하는 친구'를 사귀어야 하고, '못된 친구'는 사귀면 안된다는 강한 메세지가 숨어 있었다.
"우리 애가 머리도 좋고 착한데,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사고(불법행위, 싸움, 도둑질 등등)라도 치면 부모들은 자녀가 친구를 잘못 사귀었기 때문이라고 책임전가하는 태도를 종종 보인다. 어쩌면 부모의 마음속에는 자녀가 스스로 결정한 잘못된 결과가 아니라 타인인 친구 때문에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고 믿고 싶은지도 모른다.
내 자신도 아이들의 친구에 대해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아직은 초등학생, 유치원생이라 친구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지는 않지만 요즘 엄마들의 정보력 때문에 어떤 아이가 문제가 있고, 어떤 아이가 공부를 잘 하고, 어떤 아이의 부모가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등에 관한 정보가 이미 수집되어 널리 공유되고 있다.
이런 정보를 접하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인식하게 된 상황에서는 말썽을 부리는 친구를 멀리 하고 공부 잘 하는 친구를 가까이하라고 가르치게 된다. 아이들의 친구 이름을 일일이 기억할 수는 없지만, 공부 잘 하는 친구와 말썽을 부리는 친구 이름 정도는 기억에 남는다. 어릴 적 부모로부터 들은 내용의 학습효과가 나타난다. 아이들에게 친구를 가려 사귀는 것의 중요성을 각인시키는 일을 기회가 닿으면 하게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학교 교육이라는 것이 전형적인 인물을 양성하고 성적중심의 가치위주로 운용되고 있기 때문에 학교 시스템에 적응을 하지 못 하는 학생이라고 하더라도 사실 문제적인 것은 아님을 알고 있다. 학생일 당시 학교시스템이 요구하는 수준에 미달하거나 벗어나 있는 학생이 있을 뿐, 사회에 전혀 쓸모없는 학생은 없다.
친구도 다양하게 사귈 필요가 있다. 하지만, 부모의 입장이 되어보니 친구따라 강남갈까봐 염려된다. '강남'이 좋은 대학, 좋은 직업으로 구성된 곳이면 좋겠지만, 대부분 부모가 원하는 곳은 아니기 때문에 걱정이 앞선다.
생각과 행동이 모순되는 일이 벌어진다. 부모세대처럼 되면 안된다는 생각과 부모세대보다 더 강하고 반복적으로 친구가려 사귀기를 말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일반인으로서의 자신과 부모로서의 자신이 다르게 나타난다.
순전히 개인적인 바램이지만 아이들이 친구들의 좋은 점만을 본받고 나쁜 점은 멀리 할 수 있는 선구안과 실천력을 갖추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