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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왕후와 측천무후

변호사칼럼

by 윤소평변호사

중종은 성종의 둘째 아들이고 연산군의 동생이다. 성종의 계비 윤씨의 아들이고 연산군의 이복동생이다.


중종은 대군시절 12세에 연산군의 처남 신수근의 딸과 혼인을 했고, 신씨는 중종보다 한 살 연상이었다. 이들은 부부애가 좋았으나 신씨의 아버지가 연산군의 처남으로 당시 여러 불법을 자행하였기 때문에 신씨는 출궁당했다.


이후 윤여필의 17세 딸과 혼인을 하였으나 윤씨가 아들 하나를 낳고 25세에 사망하였고, 그 아들은 인종이 되었다. 그 후 윤지임의 17세딸과 혼인하였는데, 당시 중종이 윤씨보다 14세나 많았고 그 윤씨가 문정왕후이다.


문정왕후는 아들 하나에 딸넷을 낳았는데, 그 아들은 후일 명종이 되었다. 중종은 44세에 세상을 떠났는데, 문정왕후는 30에 불과하여 한창이었다. 아들 명종이 12세에 불과해 문정왕후의 섭정은 시작되었다.


문정왕후는 불교를 숭배한 탓에 당시 유생들에 의해 불교적 기원이나 설법, 강연 등은 반대에 부딪혔다. 하지만, 권력이 독점되어 있던 터라 문정왕후는 자신의 신앙생활(?)을 지속하였다. 불경 강의를 듣기 위해 '보우'라는 청년 중을 가까이 하면서 연모의 정을 키웠다.


보우는 문정왕후의 사랑에 힘입어 불교의 중흥을 꾀했고, 번번히 유생들의 반대에 부딪혔고, 상소도 끊이지 않았다. 명종이 성년에 이를때까지 8여년간 섭정은 계속되었고, 친정으로 변경된 이후에도 문정왕후의 정치적 개입은 계속되었는데, 보우의 불교적 행보는 계속되었고, 유생들의 반대 또한 계속되었으나 정작 임금은 이를 어찌 할 수 없었다.


여인천하라는 드라마, 문정왕후 전인화, 정난정 강수연


문정왕후는 중국 당나라의 측천무후를 평소 존경하였고 그가 행한 행적을 모방하려고 했다고 한다. 측천무후는 남편인 황제가 사망한 후 과부로서 정치를 대신하다가 스스로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다만, 정치에 있어서는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측천무후가 미남자인 신하와 가까이 지내면서 그 신하는 호가호위하였는데, 부정한 청탁을 일삼았고, 혐의가 드러나자 무후는 '네가 나와 가까이 지내는 것은 사사로운 일이고, 지방관은 국가의 공무를 띠고 가는 사람인데, 너의 고향의 일이라고 네 마음대로 지휘하고 부탁하는 것은 사욕을 채우려는 행동이니 용서할 수 없다'고 하여 죽였다고 한다.


측천무후는 80세까지 살았고, 80세에 이르러서도 미남자 6명과 함께 사랑을 나눌 정도로 관리를 잘 했다고 해서 육랑사연화, 연꽃(측천무후), 육랑(6명의 미남자)이라는 말까지 있었다.


문정왕후는 왕위에 오를 욕심까지는 부리지 않았으나, 무후와 마찬가지로 65세에 이르러서도 40세처럼 보일 정도로 미모가 빼어났다 한다. 다만, 정치에 있어서는 친족 등(윤원형, 정난정)을 개입하여 세도정치를 하여 무후와는 다른 정치행보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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