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냉정하게 말하자면 자연은 개별 구성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자연의 시스템을 유지하고 최적화하는데 관심이 있다. 당장 꽃사슴 한마리가 여러마리의 하이에나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연이 그렇게 하도록 한 것이고 그것을 통해 자연이 추구하는 무언가를 위한 것일 뿐이다.
사람은 유독 자신의 존재와 내면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동물들도 그런 활동을 하는지는 대화를 통해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알수는 없지만, 사람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자신에 대한 인식과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사회, 조직, 회사는 냉정하게 말하자면 개인에게 관심이 없다. 관심이 있는 척 하는 것일 뿐이다. 오로지 전체 사회, 조직, 회사의 유지 내지 최적화를 위해 개인에게 관심을 두는 척 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개별적인 개개인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고 진정으로 가치있는 일부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배운다.
'전체 퍼즐 중 당신이라는 조각이 빠진다면 퍼즐은 완성되지 않는다'
이런 식의 슬로건은 개개인을 전부이자 모든 것으로 여기게 만들고, 진실로 소중한 존재인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데, 장기적인 관점과 더 큰 세계의 관점에서 보면 개개인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주적, 역사적 관점까지 빌릴 필요없이 개개인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은 당장 사표를 던지고 회사를 뛰쳐나와보면 알게 된다. 금새 개개인의 자리에 또다른 개개인으로 채워지게 된다. 개개인의 영향력은 지극히 미미하다.
사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중요한 존재이고 싶다. 희망적인 것은 '노력'하면 약간은 중요한 존재가 될수도 있다.
그 '노력'은 고통을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것에서 시작된다. 누구나 사는 것이 즐겁지만은 않다. 하지만, 누구나 같은 모습의 결과로 살지는 않는다. 차이는 고통을 통해 무언가를 배웠는가에 있을 뿐이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고통을 통해 면역을 기르고 지혜를 터득할 수 있다. 일어나고 있는 불행, 불운, 고통은 여러 사건들 중 하나의 그것들일 뿐이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만큼 고통은 크고 극복하기도 어려워진다.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고 동시에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도 인정해야 고통에서 벗어나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