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평변호사
1795년 정조시절 ‘이충무공전서’에 거북선의 구조에 대해 기록이 되어 있다.
지금 만들어도 대포를 쏘면 배가 뒤집히는데, 어떻게 그 당시에!
#1 거북선 재원
생긴 모습이 거북을 닮아 배의 이름을 거북선이라 하였고, 배의 길이는 25.6미터, 폭은 8.67미터, 높이 6.06미터 가량 되어 150명 내외의 수군이 탈수 있었다.
탑승 수군 중 절반은 격군으로 아래층에서 노를 젓고, 나머지 절반은 위층에서 포와 활을 쏠 수 있도록 병력배치가 되었다.
앞은 용의 머리, 입을 통해 대포를 발사할 수 있고, 뒤는 거북이 꼬리 모양, 꼬리 밑에 총구멍이 있다.
등 부위는 판자를 덮은 뒤 그 위에 쇠못을 박았고, 통행하기 위해 좁은 십자 모양의 길을 만들었다. 적이 거북선 위로 도선하지 못 하도록 상단에는 굵은 쇠못을 박았다.
당시 왜군 수군의 전술은 조총을 발사하고 접근하여 쇠갈퀴로 상대의 배에 걸어 가까이 당긴 후 도선해서 백병전을 펼치는 전술이었으니 이같은 대비는 선견지명에서 비롯된 것이다.
좌우에는 각각 6개씩 총포 구멍이 있고, 적이 접근하면 사방에서 총탄이 터지도록 설계되었다.
안에서는 밖이 보이지만,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다. 거북선은 적송으로 만들어져서 일본의 전함보다 견고했고, 포함의 기능뿐 아니라 돌격선의 기능도 겸유하고 있다.
재정적 지원도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남들이 그걸 왜 하냐고 의문을 품어도
확신을 가지고 추진하는 인물
#2 거북선을 일컫는 기록들
‘전라 좌수사 이순신이 장수 100여 명을 세 거북선에 갈라 태워 적선 속으로 드나들며 날아가듯이 빨리 달리므로 적이 감히 가까이 오지 못 했다’(기재잡기, 박동량)
거북선 제작자 군관 나대용은 거북선 3척을 꾸며 왜적을 무찌른 공으로 경기수사가 되었다(나주목지)
큰 배들 가운데서 3척이 쇠로써 장식되었다 - 일본 지마군기
일본 조총에 대해 활로 대항해야 하는 형편,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 이순신 장군은 1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거북선을 건조했다.
그것도 임진왜란 발발 하루전날 성공되었다.
#3 확신에 찬 장군에 대한 존경
일기예보를 제외하고,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인데(그것도 가끔 제대로 맞지 않지만), 이순신 장군은 참으로 미래예측적 준비를, 갖은 장애와 비협조적 현실 속에서 이루어 내었고, 자기 결정에 대한 확신이 있는 인물이었다. 참으로 부럽고,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창조적 정신, 불굴의 의지, 부화뇌동하지 않고, 공직자로서 복지부동하지 않는 자세, 그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인물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