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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4 사천해전

윤소평변호사

by 윤소평변호사
임진년 5. 29. 맑음
우수사가 오지 않으므로 혼자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새벽에 떠나 노량에 이른 즉, 경상우수사(원균)가 만나기로 약속한 곳에 이르렀다. 더불어 상의하고 왜적이 머물고 있는 곳을 물으니 적의 무리는 지금 사천선창(경남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곧 거기로 다가갔으나, 왜인들은 이미 육지로 내려가 산 위에 진을 치고, 배는 그 산 밑에 나란히 매어 놓고는 완강히 항전하였다.
나는 여러 장수들에게 영을 내려 일시에 달려들어 화살을 빗발치듯 퍼붓고 각종 총통을 바람과 우뢰같이 어지러이 쏘아 대니 적의 무리는 겁내어 물러났는데, 화살을 맞은 자가 몇 백인지 알 수 없으며, 왜적의 머리도 많이 베었다.
군관 나대용이 탄환에 맞았고 나도 왼쪽 어깨 위에 탄환을 맞아 등으로 관통되었으나 중상에는 이르지 않았다. 또, 사부(射夫)와 격군으로 탄환에 맞은 자가 많았다. 적선 13척을 불살라 버리고 물러나 주둔하였다.




이날은 이순신 장군의 사천선창의 해전(사천해전)이고 거북선이 처음 출전한 날이기도 하다.


이순신 장군은 이날의 해전으로 어깨 관통상을 입었는데, 유성룡에게 이날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접전할 때 스스로 막지 못하고 적의 철환에 맞아 비록 사경에는 이르지 않았으나
깊이 어깨뼈를 상하였습니다.

그런데다 연일 갑옷을 입고 있으므로 상처구멍이 헐어서 궂은 물이 늘 흐르고 있어

밤낮 뽕나무 잿물과 바닷물로 씻으나 아직 낫지를 않아 민망스럽습니다"

(이충무공전서)


이순신 장군이 이미 왜적의 침입을 예상해서 거북선을 건조하고, 판옥선과 각종 총포를 준비한 사정에 대해서는 이미 설명한 바가 있다. 하지만, 사천해전이 거북선의 첫 출전으로 적의 대장선을 향해 그 하부를 공략하고, 좌우로 적의 진열을 흐트러뜨려 장군의 전략은 승리를 가져다 준다.


그러나, 거북선 건조의 지대한 공을 세웠던 나대용이 부상을 입었고 이순신 장군 또한 어깨 관통상을 입어 이날의 부상으로 장군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내내 고생을 하게 된다.


격군은 노를 젓는 병사를 의미하고, 사부는 활을 쏘는 병사를 의미하는데, 부상자 명단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 했던 많은 선조들의 죽음에 대한 기록은 그저 부정확한 숫자로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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