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Life schema

난중일기 #2 옥포해전

윤소평변호사

by 윤소평변호사
#1 1592년 5월 1일

수군들이 모두 앞 바다에 모였다. 오늘은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으며 남풍이 크게 불었다. 진해루에 앉아서 방답첨사 이순신, 배홍립, 녹도만호 정운을 불러 들였다. 모두 분격하여 제 한몸을 잊어버리는 것이 과연 의사(의로운 선비)라 하겠다.
#2 1592년 5월 3일

가랑비가 아침내내 왔다. 새벽에 경상우수사 원균이 왔다. 오후에 광양과 흥양을 불러서 함께 이야기하는 가운데 모두가 분발하였다. 전라도 우수사 이억기가 수군을 이끌고 함께 오기로 약속했는데, 방답의 판옥선이 첩입군을 싣고 오는 것을 보고 우수사가 온다고 좋아하였으나, 군관을 보내어 알아보니 방답 배였다. 아연함을 이길수 없었다. 조금 뒤에 녹도만호 정운이 보자고 하기에 불러들여 물은 즉, 우수사는 오지 않고 적의 세력은 점점 경기도에 이르니 통분한 마음 이길 길 없으나 만약 기회를 놓치면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곧 중위장을 불러 내일 새벽 떠날 것을 약속하고, 장계를 써서 보냈다. 이날 여도 수군 황옥천이 적이 온다는 소리를 듣고 집으로 도망간 것을 잡아와 참수하여 효시하였다.

이순신 장군의 첫 해전은 1592년 5월 7일 옥포해전이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년 5월 4일 새벽에 첫 출전을 한다. 이순신 장군은 옥포해전에 판옥선 24척, 협선 15척, 포작선 46척 등을 휘하에 두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이 전라 좌수사로 임명되어 임지에 당도했을 때 장교와 일반병들은 전쟁 준비에 소홀하였고, 배임행위를 일삼았다. 이에 곤장과 참수로 군율을 세워 나갔다. 다소 엄벌주의에 해당하는 판결인 듯 하나 당시 기강이 상당히 해이하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수군들이 병선을 수선하지 않았고, 자기 이익에만 몰두하고 있었고, 수군이 이웃집 개에게까지 피해를 준 일 등으로 곤장 80대를 선고하여 집행하기도 했다.


1592년 2월 8일 일기를 살펴보면, 평상시처럼 공무를 보고 거북선에 사용할 돛베 29필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필시 전쟁발발을 예상하고 꼼꼼히 준비를 한 것으로 보인다. 고군분투는 이순신 장군을 두고 하는 말인 듯 하다.


우리 군이 리더만 고민하는 형편이었으니, 당연히 엄벌로 다스릴 수 밖에 없었음이 짐작이 간다. 게다가 경상 우수사에게 지원을 요청하였음에도 응답을 하지 않아 전라 좌수군만으로 첫 출전을 결행해야 한 것으로 보인다. 일기에 '아연함을 이길 수가 없었다'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면, 당시 지휘관들도 형세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 하고 있었던 듯 하다.


옥포해전에서 우리 군은 왜선 26척을 격파했고, 도주하는 적을 지금의 통영까지 추격하여 추가로 11척을 더 격파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난중일기#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