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너 결혼 안 하니?", "이번 생에는 글렀어. 다음 생에"
"너 취업 안 하니?", "이번 생에는 글렀어. 다음 생에"
"너 수학공부 안해?", "틀렸어. 해도 안돼"
게임은 플레이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초기화할 수 있다. '처음부터 다시'가 가능하다. 게임과 친숙하게 성장한 세대는 '리셋'에 익숙하고 또한 과감하다. '이 상태로 질질 끌바에는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고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 서슴없다.
우리 사회에 포기라는 말이 만연함에도 그것을 금기해야 한다는 분위기는 찾을 수가 없다. 오히려 포기의 태도가 설득력을 가지고 있고, 포기를 이해하려는 분위기가 더 팽배하다. 결혼포기, 출산포기, 취업포기. '~~포기'.
청년들이 '포기'의 영역을 넓혀가는 동안 기성세대는 '포기'의 문제를 집권당의 문제로 비난하는데 화력을 집중해 왔다. '포기'를 만드는 사회정책적인 요소가 문제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기만 하였을 뿐, 포기하려는 마음과 태도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과 관심, 공감은 논외로 되어 왔다.
포기를 마음먹는 순간 실현가능성은 0%가 된다. 꿈꾸지 않고 희망하지 않는 목표와 계획은 확률제로가 될수밖에 없다. 꿈틀거리며 발이라도 담궈야 확률 반반의 게임이 될텐데, 아예 포기해 버린다면 확률이 없어져 버린다.
인생은 게임과 달리 리셋이 불가능하다. 게임에서는 적절한 '포기'의 선택이 다음 판 게임에서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될수도 있지만, 인생에서는 '포기'하는 순간 그 꿈, 목표, 계획은 확률 제로가 되어버린다.
세상이 들이대는 잣대들, 학벌, 스펙, 집안배경, 빽 등 출발점을 다르게 만드는 요소들과 거리가 멀수록 포기가 비례할 수 밖에 없다는 푸념에 순순히 동의하지 말아야 한다. 사회적 잣대에 동의하고 수용한다면 현재 미달되어 있는 자신을 가능성없는 존재로 인정하는 것과 같다.
변화, 변혁, 개혁은 언제나 결핍을 앓고 있는 부류의 불만족과 고통의 폭발에 의해 이루어져 왔고, 잘먹고 잘사는 부류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았다. 역사적 사실이 증명하고 있다. 이는 포기를 포기해야 하는 이유에 포함되고 끝까지 길을 걸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인생은 게임처럼 리셋할 수 없다. 결론적이다. 단지 포기를 그만두고 밀치고 나아가야 한다. 기성의 잣대에 순순히 동의하지 말아야 한다. 계속 달릴 때 마라톤 코스를 완주할 확률은 최소한 반반이 되지만, 포기를 마음먹고 그 자리에 정지하는 순간 완주확률은 제로가 되어버린다. 포기를 망각해야 한다. 포기는 배추를 세는 단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