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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May 10. 2019

을의 대항력

일상의 변론

힘없는 하청업체, 임차인, 그리고 직원들!



S전자회사의 2차 밴더였던 A회사는 재무상태표상(손익계산서상) 연평균 매출 100억원을 기록했지만, 순 영업이익은 매출대비 7%도 되지 않은 상태로 3년간 사업을 유지하다가 S회사가 1차 밴더에게 가격을 후려치자 1차 밴더 역시 A회사에 대해 같은 짓을 했다. A회사는 매출급감과 아울러 영업손실을 곧바로 기록하며 도산했다.


H제철의 하청업체인 B회사는 5년간 안정적인 매출을 기록하는 듯 하다가 H회사의 손실을 B회사에 전가하자 거래를 중단하고 다른 매출처를 구하지 못해 대폭 구조조정을 했으나, 계속기업가치가 없는 회사로 판단받아 회생절차에서 폐지결정을 받아 회생에 실패했다.


상가 임대인이 임차인의 영업실적이 좋아 보이자 5년을 채운 뒤 임대차 갱신을 거절하고 같은 업종의 영업을 자식에게 시켜 계속 영업을 하기로 했다. 쫓겨나듯한 임차인은 그간 쌓아올린 단골, 인지도 등 무형의 자산을 상실했다.




갑질 VS 을의 대항력

소위 '갑질'이라고 하면 선뜻 떠오르는 장면이 컵을 던지고, 고함을 지르고, 폭력을 '을'에게 행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갑질'은 비단 이러한 원초적인 행위에 국한되지 않는다. 불공정한 거래와 계약, 외형상 적법해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을'의 고혈을 탈취해 가는 형태의 '갑질'은 상상 이상으로 많다.


'을'은 '갑'에 대해 정당하게 요구할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힘의 불균형 때문에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 하고, '갑'에게 부탁부터 시작해 간구하기까지 하다가 '갑질'의 카운터펀치에 나가 떨어진다.


'을'은 다방면으로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해 보지만, 해결의 기미가 없고 법적인 책임을 묻는데에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고, 그 결과 또한 '을'의 권리구제에 유리할지는 미지수이다. '을'은 오랜 기간을 버틸 지렛대가 짧기 때문에 어떤 구제절차이든 실질적인 도움의 손길이 뻗치기까지 버틸 수가 없다.


'갑'이 '갑질'을 마음놓고 행사할 수 있는 이유는, 정부가 손대지 못하고 법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 하는 것 이외에 '을'이 실질적으로 '갑'에 대해 대항을 할 수 있는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수단이 현재 있다고 하더라도 그 수단이 '을'에게 대항력을 부여할지, 부여하더라도 실제 유익한 결론을 가져다 줄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대의제 기능의 개선과 '을'의 응집, 그리고 새로운 사회적 합의

한국은, 중국이나 북한처럼 정부가 문제라고 판단되는 영역에 마음대로 메스를 댈 수 있는 그런 구조의 국가가 아니다. 꼴에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 대의기관은 집단의 이익과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고, 대기업을 비롯한 사회 곳곳에 뿌리를 뻗어 '을'의 고혈을 착취하는 자본가에 대한 규제에는 무능력하다.


민주주의는 사실 시끄러워야 하는 것이 본질적인 체제이다. 다양한 소리와 울부짖음이 방송되어야 하고, 오랜 기간 토론과 논쟁을 거쳐 적정한 합의를 도출해 '을'의 요구가 관철되고 '갑'의 권력을 적정 수준 이하로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


'갑'과 '을'의 얘기가 일상화되었다는 것은 이미 한국사회가 이분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사회가 분열되어 국민들의 총체적 함의와 총의가 체제 운영에 동력이 되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식으로 지속되면, 결국 '을'은 분노하고 응집하게 된다. '을'의 응집력이 사회 안정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이전에 '을'의 대항력을 신장시켜 주어야 한다.


'을'이 구매력이 있어야 기업도 매출을 올릴 수 있고, 국가 시스템도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을'에게 방패를 주지 않는다면, 결국, '을'의 응집력이 임계점을 넘는 순간 우리 사회는 더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 어쩌면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전락할 수도 있다.


청년, 중년, 노년. 구분없이 힘든 시기를 살아갈 날이 도래하고 있다. 한강의 기적은 번개불처럼 한때 거세게 빛났다가 요란한 소리만 남긴채 사라질 수도 있다. 날로 '을'의 부채는 늘어가고 '갑'에게 대항력을 잃어가고 있다. 정부와 대의기관은 그 기능을 거의 상실한 듯 보인다. 정치, 경제, 외교 등 국가 경영의 각 섹터 어느 부분도 가시적인 효익을 보여주지 못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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