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etter life

우리는 아프다 #1 선입견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외관상 드러나는 질병으로 입원을 하거나 아픈 경우 그 아픔을 표현하고 병원을 찾아가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는다. 가족, 동료 등 주위 사람들도 '빠른 쾌유'를 기원하는 응원과 위로를 아끼지 않는다. 아픔을 인정하고 인정받으면 치유속도도 빠른 듯 하다.


나는 우울하고 불안하다!

외적인 병적 상태에 대해서는 자각과 외적 평가가 대체로 관대함에 비해 정신적인 질환에 대해서는 자각과 타각이 매우 인색하다. "나는 요즘 너무 우울하고, 불안해! 잠도 잘 못 자겠고, 내일이 걱정되서 불안해 죽을 지경이야. 잘 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말로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지도 않을 뿐더러 용기를 내서 말로 표현했다고 해도 돌아오는 반응은 거의 동일하다.


사는게 다 그런 거야. 삶은 원래 그래. 야! 너는 나보다 나아. 계절 타나 보다

좋은 아들, 좋은 아빠, 좋은 사장으로 지속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숙제가 강박감과 불안, 염려, 우울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 하게 할 뿐 아니라, '사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야', '가을타는가 보다' 등 개별 구체적으로 힘든 감정과 정신적 증상에 대해 외부로 표현하기도 어렵지만,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답변들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누가 돈을 벌었다가 성공했다거나 행복한 스토리나 즐거운 스토리는 쉽게 토로해서 공유하면서 정신질환적 증상에 대해서 표현하고 위로받는 일은 현실에서 좀처럼 일어나기 어렵다. 공부 잘 해야 하고, 좋은 직업을 가져야 하고, 개인적인 삶도 문제가 없도록 잘 해야 하는 슈퍼맨을 강요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멘탈이 약해서 그래!

문득 불안이 엄습해 오고, 주체할 수 없을만큼 우울한 지하실에 갇힌 듯 하고,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가늠하기 힘들고, 이유모를 짜증과 분노,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누구, 무엇을 향해 외칠수도 없는 상태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면 우리는 자각과 치료, 그리고 치유가 필요한 상황에 빠진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신과적 진료를 받는 것 자체에 대해 스스로 기피증세가 있고, 타인의 시선과 승진, 취업, 시험 등에 있어 정신과적 진료기록이 발목을 잡을까봐, 그런 것이 아니어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이상한 정신병자처럼 취급할까봐 걱정되서 선뜻 자신의 상태를 드러내놓지를 못 한다. 지금 나는 힘들어 죽을 것만 같은데, 제대로 말할 수도 없으니 치명적인 외로움마저 밀려온다.


믿을만한 사람에게, 그가 배우자이든, 친구이든 솔직하게 자신의 우울감, 불안감, 강박감 등에 용기를 내어 말하게 되더라도 그들의 입으로부터 듣게 되는 말은 "멘탈이 약하구만"이라는 평가와 충고일 때가 많다.

자신이 우울감이나 공황증세를 겪게 된 것이 전적으로 자기 책임으로 평가될 뿐이다. 게다가 자신 역시 '내가 많이 지쳤구나, 내가 문제가 있나 보다'라는 자책과 회의로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는 것으로 결론내는 경우도 있다.


질병은 의사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서 살다 보니 발버둥을 멈추면 도태될 것만 같은 강박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이다. 모두가 안 그런척 할 뿐이다.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상태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고, 진단을 받는다. 의사는 '번아웃'이라고 말해 주고,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는 아니며 약을 복용하고 가급적 마음을 편하게 먹으면 예전 상태로 돌아올 것이라고 진단한다.


거짓말처럼 약을 복용하고 하루하고 반나절이 지나자 끊이지 않았던 두통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해진다. 그리고, 저녁 복용약으로 충분한 수면을 취할 수 있게 된다. 우울감, 불안감, 강박감과 같은 부정적이라고 평가되는 감정상태나 정신상태는 행복감과 즐거움처럼 우리 모두에게 포함되어 있는 우리의 일부이다. 다만, '쎈척', '아닌 척' 할 뿐이다.


상처난 부위에 옷을 걷어내고 빨간 약을 바르고, 그 상처부위에 세균이 침입하지 않도록 밴드를 붙여 외부적 접촉이 없도록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겪는 스트레스, 우울, 화, 분노, 강박, 걱정도 드러내 놓고, 치유를 받을 필요가 있다. 그 시작은 스스로 자신의 정신상태와 감정상태에 대해 솔직하고 용기있게 인정하는 것이고, 가족, 동료, 나아가 이 사회 전체가 이 문제에 대해 사회적 치유가 필요한 것임을 인정하고 개인과 사회적 공감과 치유를 지속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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